미군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잃은 이슬람국가(IS)가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1일(현지시간) 발생한 대량살상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바그다디의 제거 사실을 떠벌리며 세계 전역에서 IS 패퇴를 선언했지만 정작 IS는 말리 외곽 군사기지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며 자신들의 회복력과 아프리카 전역에 뻗어있는 영향력을 과시했다.
IS는 2일 선전 매체를 통해 말리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테러 공격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IS 측은 “칼리프의 병사들이 변절자 말리군 기지를 공격했다”며 “프랑스군 호송차에도 폭발장치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말리 군 당국은 “테러로 말리군 49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말리 북동부 메나카 지역을 지나가던 프랑스군을 겨냥한 추가 테러도 사망자를 낳았다. 프랑스 국방부는 “무장차량이 급조폭발물과 부딪히면서 차량에 탑승해 있던 군인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번 테러가 발생한 지역은 서아프리카 사헬지대(사하라사막 이남 지역)로 불린다. 알카에다와 IS를 비롯한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미군 정보기관에 따르면 현재 서아프리카에 주둔하고 있는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병력은 1만1000명이 넘는다.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무장단체의 테러 공격으로 93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절반가량은 서아프리카에서 나왔다. 특히 말리의 경우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2012년 북부를 장악한 뒤 잦은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월에도 부르키나파소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리 군 기지에서 테러가 발생해 군인 38명이 숨졌다.
워싱턴포스트는 3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공격은 알카에다·IS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여전히 말리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한 피의 표식”이라고 전했다. 수장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IS의 세력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테러라는 것이다. 끝없이 계속되는 이 지역의 빈곤, 만연한 불안, 인종적 차이에 기반한 착취, 문제를 방치하는 정부의 행태가 IS 등 무장세력의 창궐을 추동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지역의 문제들이 IS가 2014년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서 유사 국가기구를 세울 수 있게 만들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WP에 “자칫 빈곤과 착취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IS가 재결집하는 일을 오히려 돕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단순히 무력을 쓰는 일을 넘어서 최근에는 말리 내부 부족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이들 사이에 파고드는 전략도 사용하고 있다. WP의 서아프리카지부 국장인 다니엘 파켓은 “알카에다·IS와 연계된 전투원들은 말리 내부 풀라니족과 도곤족 사이 오랜 갈등을 부추겨 싸우게 만든 뒤 전쟁의 피해자가 된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역제안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곤족 자경단에 의한 풀라니족 학살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지난 4월 사임한 수메일로 부베예 마이가 전 말리 총리는 당시 WP에 “미국은 중동에서 그러했듯 사헬 지역 문제에도 똑같이 개입해야 한다”며 “이제 말리의 안보가 국제안보의 핵심 키가 됐다”고 경고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