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동력을 찾아라”… 제조업계, 사내 벤처 붐 확산

입력 2019-11-04 04:01

1990년대 후반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내 벤처 붐이 일었다. 구성원들의 도전정신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려는 목적이었다. 삼성SDS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네이버, LG그룹 통신 계열사 LG데이콤의 사내벤처로 시작한 인터파크 등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그라들었던 사내 벤처 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다시 일고 있다. 이번엔 자동차, 철강 등 전통적인 제조업계에서 그 분위기가 거세다. 신성장동력을 필사적으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탓이다.

포스코는 지난달 말 그룹의 사내 벤처 ‘포벤처스’ 1기 12개팀을 출범시켰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고 미래 신성장사업을 발굴한다는 목적으로 포스코는 지난 6월 사내 벤처 제도를 도입하고 그룹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아이템 공모에 나섰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3개 사내 벤처를 독립 기업으로 분사했다. 지난 5월 독립한 ‘엠바이옴’ ‘튠잇’ ‘폴레드’는 사별로 3~5년의 육성 및 준비기간을 거쳤다. 이들은 자동차 실내 공기질 케어, 차량 개인화 기술, 주니어 카시트 등 자동차와 관련된 기술을 보유한 유망 스타트업들이다.

제조업 회사들이 사내 벤처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건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미래 활로 개척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경기 부진과 포화 상태에 다다른 시장은 기업이 더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그 결과물의 형태를 바꿔놨다. 대부분의 과정에 인간이 개입해야 했던 생산공장은 ICT 기반의 스마트팩토리로, 자동차는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로 변신했다. 완성차 회사는 자동차를 만들기만 하던 전통적 모습에서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달라진 산업 환경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선 창의력을 발휘하고 신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한 예로 포스코 ‘카본엔’ 벤처팀은 ‘제철 부생가스 활용 액화탄산가스 제조’ 아이템을 선보였다. 철강 제품 생산은 물론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탄산음료나 용접용 가스 원료를 공급하는 탄산가스 제조사에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서도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사내 벤처는 활성화되고 있다. 마케팅 채널 다변화, 수요 세분화로 기존 방식으로는 매출을 증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사내 벤처팀 ‘S.I_랩’을 통해 신진 디자이너 및 유명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한정판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특정 시간에 독점 판매하는 ‘드롭스’를 기획했다. 한정판 제품을 좋아하고 자신의 경험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는 것을 즐기는 밀레니얼세대 이후를 겨냥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내 벤처 프로그램 ‘린스타트업(Lean Startup)’을 통해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큐브미를 선보였다. 롯데홈쇼핑은 사내 벤처 1호인 ‘대디포베베’에 17억원을 투자, 다음달 특허 기술을 보유한 유아용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3일 “전통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은 미래 핵심 기술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자리 창출과 창업문화 확대 등의 책임을 가진 만큼 사내 벤처 투자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