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지지 정당이 없다’고 대답하는 무당층·중도층은 꾸준히 25%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지지율과 엇비슷한 수치다. 국민 4명 중 1명꼴인 중도층을 잡아야 집권 후반기도 연착륙할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여권이 참패한 것은 중도층이 아니라 지지층에만 함몰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권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집결한 9·29 서초동 집회에 고무됐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초동 집회를 “200만 국민의 뜻, 마음속 촛불까지 합치면 2000만”이라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라며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조 전 장관 사퇴 여론을 누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지지층 중심의 집회 규모를 근거로 여론을 이기려 했던 ‘팬덤 정치’ ‘세몰이 정치’는 10·3 광화문 집회라는 거대한 반작용을 불러왔다. 광화문 집회는 기존 보수 세력에 중도층까지 대거 연합한 집회였다. 결국 조 전 장관은 사퇴했고,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차례로 사과를 해야 했다. 지지자들만 바라본 여권의 참패였다.
조국 사태 때 여권이 계속 헛발질을 한 것은 지지의 ‘강도’를 지지의 ‘규모’로 오인한 착시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3일 “문 대통령 지지층의 지지 강도가 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국민 다수의 지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단적인 예로 모든 여론조사에서 ‘조국 임명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계속 앞섰다”고 했다. 여권이 지지층의 성난 집회로 들떠 있었지만 ‘침묵하는 다수’의 여론과는 달랐던 것이다.
문재인정부 집권 4년차에 맞게 되는 총선은 ‘레임덕’의 분기점이다. 여당이 선전해야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 총선 패배는 곧바로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총선 승리”라며 “총선에서 여당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정치 구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어떤 인물이 나서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박 평론가는 또 “민주당의 인적 쇄신도 시급하다. 조국 사태 때 말 한마디 못하고, 선수만 3~4선 된 인사들이 있는 한 별로 희망이 없다”고 했다.
여당이 적극적으로 민심을 전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민주당이 청와대에 민의를 전달해야 하는데 지금은 폐쇄적이고 자신들만의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집권당에 자율성이 없다. 이렇게까지 무기력한 여당은 처음 본다”며 “내각도 힘을 못 쓰고 대통령과 청와대만 있다”고 했다.
여당 내 비주류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국 사태 때 정성호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의원 정도가 쓴소리를 했을 뿐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조국 수호를 자처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난 2년반 동안 여권에선 당청 갈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여당 내 비주류의 부재는 역동성, 복원력, 변화 동력의 저하로 연결된다”고 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집토끼(전통 지지층) 못지않게 산토끼(중도층)를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는 조국사태 당시 중도층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이탈한 것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향후 청와대와 여당이 ‘중도층 달래기’에 성공하느냐 여부에 따라 정권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임성수 신재희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