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소비가 美 견조한 성장 이끌었다… 1% 성장 시대에 나홀로 2% 성장하는 미국

입력 2019-11-04 04:04

가계소비가 미국의 견조한 성장률 흐름을 이끌어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높은 고용률 때문에 꾸준한 소비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연 2%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면서 가계소득을 끌어올린 것이다. 정부의 재정정책 ‘지원사격’도 한몫했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주택경기 둔화 조짐 같은 민간소비를 위협하는 요소가 상존한다. 미국의 민간소비 둔화가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해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조사국 안시온 미국유럽경제팀 과장과 박상순 조사역은 3일 한은 해외경제포커스에 수록된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는 2014년 이후 민간소비 호조에 힘입어 다른 주요 선진국보다 양호한 성장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성장에 민간소비가 기여하는 수준이 전체의 약 85%에 달한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이나 민간투자의 부진을 민간소비가 만회한다는 의미다.

한은에 따르면 미국 민간소비 증가율은 최근 5년(2014~2018년)간 연평균 3.0%에 달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민간소비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1%대 초·중반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배 가까이 차이 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미국의 성장률을 올해 2.4%로 예상했는데, 이 가운데 대부분인 2.0% 포인트가 민간소비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가 꾸준히 이어진 배경에는 높은 고용률이 꼽힌다. 미국은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다. 지난 8월 기준 미국 구인자 수는 705만명으로 신규 취업자 수(578만명)뿐만 아니라 실업자 수(604만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한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통·콘텐츠 관련 IT·서비스 업종이 호황을 누리면서 가계의 근로소득을 높였고, 그 결과 소비 여건도 개선시켰다”고 분석했다. 경기 호황으로 가계가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배당금 같은 금융소득이 늘어난 것은 덤이었다.

가계소득 증가는 가계부채 감소 효과로 이어졌다. 미국의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86.0%였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말(111.5%)보다 25.5% 포인트 개선됐다. 한은은 “저금리 기조로 부채가 낮아졌고 원리금상환비율(DSR)도 올해 2분기 10% 아래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지출도 한몫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기업의 감세 정책과 정부의 재정지출 상한선을 늘리는 정책을 병행했다. 시중에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소비를 진작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미·중 무역분쟁은 여전히 미국의 민간소비를 위협하는 변수다. 한은은 최근 양국 간 협상 진전에도 불구하고 향후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기업이익이 감소해 가계소득도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여기에다 주택 거래량도 줄어들고 있어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은은 “미국의 소비 여건 변화에 대비해 제품경쟁력 강화, 신시장 개척 등 대응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국의 민간소비 변화에 민감하다. 미국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언제든지 한국 수출 시장에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