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북핵 폐기와는 동떨어진 북·미 합의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될 만한 액션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대선 승리에 혈안이 된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그의 럭비공 같은 스타일이 더욱 심해져 북·미 관계의 예측 불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북핵 폐기의 실질적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북 제재 해제 등 과감한 제안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에는 한목소리로 대북 정책의 큰 변화를 예상했다. 북·미 관계가 예측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북한을 원칙대로 대하게 되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성과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미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지난달 29일 한반도 전문가인 켄 가우스 미 해군연구소(CNA) 국장,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 칼 프리도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연구원과 각각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도 북·미 비핵화 협상에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선거전에 활용하기 위해 북한과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는 연관이 없는 합의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프리도프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폐기와 같은 ‘빅딜’보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 같은 ‘스몰딜’을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스몰딜’을 한반도에서 갈등을 끝낸 증거라고 강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내년에도 4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가우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운동 중에도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할 것”이라면서도 “그가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제재 완화를 제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대화에서 진전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을 외교치적으로 강조해왔기 때문에 선거 국면에서 북한 문제에 진전이 없을 경우 민주당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대응에 대해 프리도프 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대선 국면의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하려고 애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적인 단점을 협상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북·미 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는 데 대해 분석이 끝났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주지 않았던 선물을 받았다”면서 “그것은 양보 없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게 된 정치적 위상”이라고 주장했다.
가우스 국장은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독특한 대통령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치를 취하진 않더라도 내심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의 예측 불가능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여론과 야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줄어드는 만큼 북한에 대해 과감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가우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김 위원장과 더욱 진지하게 협상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며 “북핵 문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북한에 양보를 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제재 해제 등 과감한 조치를 먼저 취하면서 북핵 폐기의 급진전을 이뤄낼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매닝 선임연구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에도 김 위원장에 대한 유화적인 스탠스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신의 대북 정책을 뒤엎는 것은 북한에 대해 잘못된 접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도프 연구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이후에도 북핵 성과와 관계없이 김 위원장과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대북 관계에 대해 매닝 선임연구원은 “거대한 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은 핵 확산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또 북한의 독재 체제와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고 설명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또 “민주당이 집권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보였던 어느 정도의 존중과 혜택도 주지 않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조종하기 쉬운 미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올 연말을 데드라인으로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는 것도 유리한 합의를 트럼프 대통령과 서둘러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프리도프 연구원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 대북정책은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이 도발을 선택하면 민주당 정권은 북한 고립을 더욱 밀어붙이겠지만 불필요하게 긴장이 고조되는 레토릭을 구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 같은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우스 국장은 민주당의 대북정책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것”이라며 “이 접근법으로는 북한의 도전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