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D-1년] 미국 공화 트럼프 ‘원맨쇼’ 기대하고 민주 ‘반트럼프’ 올인

입력 2019-11-04 04:07

내년 11월 3일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미 대선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반 선거’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에 기대를 걸고 있고, 민주당은 ‘반(反)트럼프 바람’에 올인하고 있다. 내년 대선은 그야말로 ‘트럼프냐, 아니냐’의 싸움인 것이다.

미국의 힘을 감안할 때 미 대선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북 비핵화 협상과 한·미동맹 등 한반도에 미칠 파장도 크다. 미 대선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드러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후보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과를 예측하기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군소 후보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공화당은 버지니아주와 캔자스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대선 후보 경선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길 것이 뻔한데 돈과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화당에서 경선을 실시하지 않는 주는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0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9∼46%를 오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해 탄핵 조사가 시작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나쁜 성적표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정 지지층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장지대)에 사는 백인 남성 노동자들과 ‘팜벨트’(미 중서부 농업지대)에 사는 백인 남성 농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공학적으로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중국·유럽연합(EU) 등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도 이들의 표를 의식한 조치다.

다른 천군만마는 경제호황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소비자심리 주가지수 실업률 등 3가지 모델을 적용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수준의 미국 경제 상황이 지속되고, 돌발 변수가 없다는 가정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민주당의 경선 구도는 ‘2강 1중’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선두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으며, 그 바로 뒤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맹추격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동력은 ‘반트럼프 바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스타일, 무책임한 발언, 오락가락 행보, 인종·여성차별적 언행 등에 국민 상당수가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판단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고학력자, 여성, 도시 거주자, 젊은층, 유색 인종들이 표를 몰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치 상황은 좋은데 승리를 장담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데 민주당의 고민이 있다. 76세의 바이든은 신선함이 없고, 워런은 과격해 보이는 것이 부담이다. 78세의 샌더스는 심장 이상으로 유세까지 중단했던 탓에 사실상 경선 레이스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다.

현실성은 높지 않지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빼앗겼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의 차출론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민주당은 내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경선에서 바람몰이를 하고, 새로운 후보가 선출되면 정권 교체의 열망이 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선 가도에 메가톤급 돌발변수도 등장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해 촉발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대형 악재로 보인다. 불리한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나올 경우 공화당은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백악관을 내줘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부메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까지 나온 증언들 중 결정타가 없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탄핵의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탄핵이 부결되면 민주당 측은 표 대결에서 졌다는 입장을 내놓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죄’를 강변하며 역공에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자칫 바이든만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당시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선에서 이겼다. 원동력은 남부 플로리다주와 중동부 3개 주(펜실베이니아주·미시간주·위스콘신주)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이 4개 주에서 승리하는 후보가 백악관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트럼프 진영이 그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이는 주는 플로리다주다. 플로리다주는 할당된 대선 선거인단이 29명이나 되고, 대선의 풍향계이기도 하다. 1928년 이후 23번 치러진 미 대선에서 두 차례만 빼고 플로리다주를 차지한 후보가 백악관 주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18일 재선 출정식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개최한 것도 이곳에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 때문이었다. 평생을 뉴욕에서 지낸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주소지를 플로리다주로 옮긴 것도 세금 문제뿐만 아니라 대선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펜실베이니아주·미시간주·위스콘신주는 ‘파란 벽’(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을 빗댄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불렸다. 이들 3개 주는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이 줄곧 승리했던 18개 주에 속했으나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이들 3개 주의 선거인단을 합하면 46명이다.

접전 4개 주의 표심은 예측이 어렵다. 4개 주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가장 큰 득표율 차로 이긴 곳은 플로리다주였는데, 그 차이는 1.19%였다. 4개 주 모두 아슬아슬하게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벌써부터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이 4개 주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이유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