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와플 시럽으로 이런 작품이”… 금천에 내린 문화 단비

입력 2019-11-05 04:08
지난달 31일 서울 금천구 금천예술공장에서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을 공개하는 오픈하우스가 열려 3일간 진행됐다. 사진은 자신의 작업실을 찾은 손님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최선 작가.

“와, 와플 시럽으로 그림을 그리다니요. 우리 애들이 최선 작가 작품을 보고 아주 신기해했어요. 콧물로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하지 뭐예요.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재료를 갖고 그리니, 그래서 예술가인가 봐요.”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금천구 금천예술공장. 잔치라도 벌인 듯 주차장에는 뷔페가 차려지고 왁자한 소리와 활기가 건물 안팎에 넘쳤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 레지던시(작가들에게 1년 단위로 제공하는 작업실)인 금천예술공장이 공모를 통해 입주한 국내외 작가 15명의 작업실을 외부에 공개하는 오픈하우스 첫날이었다. 동네 주민 박진아(47)씨는 초등생 두 딸, 여동생과 이곳을 찾아 작업실을 둘러본 뒤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최선(46) 작가가 와플 크림을 사용해 원로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을 걸어 놓았던 것이다. 박씨는 “젊은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풋기가 느껴져 좋았다”고 했다.

구로공단의 배후 지역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금천구에서는 옛 인쇄소를 리모델링한 금천예술공장이 문화적 단비 역할을 한다. 오픈하우스에는 래퍼 공연이 있기도 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유성훈 금천구청장도 개막식에 찾아와 금천구의 문화 오아시스가 돼주기를 당부했다. 개막 행사에서는 지역 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주민 신숙희씨가 제작한 영화 ‘굴레’와 입주작가 김준씨가 준비한 퍼포먼스 ‘침묵의 소리’를 선보였다.

레지던시 오픈하우스는 미술관장, 큐레이터, 화랑 주인 등 미술계 전문가들이 주로 찾는다. 전시할 작가를 물색하기 위해서다. 이날도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 오세원 복합문화공간 씨알콜렉티브 대표, 김인선 윌링앤딜링 대표,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대표 등이 눈에 띄었다. 루프의 양 대표는 “레지던시는 미술 생태계에서 가장 젊은 작가들이 모이는 곳이다. 신작이 무엇인지, 겹쳐지는 공통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작업실을 찾은 손님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신현정 작가.

스튜디오를 둘러보니 천을 사용한 작업들이 교집합처럼 눈에 띄었다. 신현정(40) 작가는 청바지, 양복의 다리와 팔 부분을 싹둑 잘라 실크 천에 입체적으로 붙여 추상적 효과를 냈다. 30대 후반이라고 밝힌 임윤경 작가는 관객들의 옷에 시사적인 문구를 새긴 밴드를 재봉질해 주는 관객참여형 작업을 내놓았다. 포르투갈 출신 아나 멘데스(46)는 색색의 실크를 벽에 걸어놓은 게 작품이었다. 그는 “포도, 아보카도, 버섯, 콜라 등으로 염색을 해서 낸 색깔들”이라며 “우리에게 자연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스튜디오에선 미대 수업의 일환으로 왔다는 경희대 한국화과 학생 2명이 한창 작가의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개막 행사에서 인사말 하는 유성훈 금천구청장.

전시라고 하면 미술관과 화랑만 떠올리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레지던시 오픈하우스는 구청장과 주민, 전문가와 일반인이 어우러지는 융합의 장이 돼가고 있었다.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기획전 ‘번외편: A-사이드-B’는 22일까지 열린다.

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