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쓴 조의문을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북한이 금강산 남측 관광시설 철거를 요구하는 등 남북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친필 조의문’이 관계 회복의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김 위원장이 전날 오후 늦게 문 대통령 앞으로 조의문을 전달해 왔다”며 “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께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조의문은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전날 판문점을 방문해 북측 실무자로부터 직접 수령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실장에게 조의문을 건넨 북측 인사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아니다”며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윤 실장은 지난 30일 오후 9시35분쯤 강 여사 빈소가 마련된 부산 남천성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약 35분간 머물렀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의 조문을 받지 않았지만 윤 실장은 빈소에 들어갔다. 조의문을 전달하는 ‘극비 업무’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 대해 조의를 표한 것은 지난 6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이후 4개월 만이다. 이 여사 별세 때 김 위원장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판문점으로 보내 조의문과 조화를 전했다.
북한이 강 여사 별세를 두고 애도의 뜻을 전해오면서 청와대 내부에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은 최근 금강산 관광 문제 논의를 위한 남측의 실무회담 제안을 거부하는 등 대화를 원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조의를 표한 것은 남측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아무 입장을 내지 않을까봐 긴장했던 건 사실”이라며 “경색기를 맞긴 했지만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치르며 돈독해진 남북 정상 간 신뢰가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조의문이 당장 남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북 정상 간 신뢰를 확인하고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의문을 전달받으면서 남북 간 다른 (현안)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면서도 “남북 관계에 있어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