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큰 액수의 증액을 요구했지만 항목별 수치나 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이수혁(사진) 신임 주미대사가 30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대사는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미국이) 굉장히 큰 숫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하면서 미국의 진의를 파악해봐야 한다”면서 “항목별로 세분화돼서 ‘여기에 몇 억’ 등 수치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개시에 앞서 미국은 한국에 내년도 분담금을 50억 달러로 증액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분담금에서 5배로 인상한 액수다.
이 대사는 “규모가 커지면 부담하는 분야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도 개정해야 하는 등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위비 증액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현실과 너무 떨어진) 숫자에 미국 실무자들이 합의해줄지는 미지수”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집요하게 그 숫자에 매달릴지는 알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사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문제와 관련해 “미국도 남북 경협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다”면서 “다만 현재 제재 하에서 두 사업을 진행하는 건 아직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인의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북한이 철거를 요구한 지금 시점에서는 관광 재개 논의가 의미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북·미 실무협상은 연내에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대사는 “북·미 비핵화 협상은 안 만날 것 같다가도 두세 달 후에 만나기도 한다”면서 “시기는 모르겠지만 (북·미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예상했다.
이 대사는 31일 북·미 협상 미국 측 실무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이 대사는 “비건 특별대표가 부장관이 돼도 대북특별대표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이날 오전 국무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했다. 또 상원 외교위 동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과의 면담을 시작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이 대사는 “미국이 외국 (신임 대사에 대한) 제정을 1, 3, 7, 9월 네 번 하는데 9월이 그 해의 마지막”이라며 “내년 1월 (나에 대한) 신임장이 제정될 것 같은데, 그때까지는 활동에 제약이 있는 ‘반쪽짜리 대사’”라고 웃으며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