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탄핵조사위원회가 존 볼턴(사진)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다음 주에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와 관련해 최측근이었다가 해고당한 볼턴의 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30일(현지시간) 하원 탄핵조사위가 볼턴 전 보좌관에게 오는 7일 출석하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탄핵조사위는 볼턴 전 보좌관이 자발적으로 출석하지 않을 경우 소환장 발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다. NYT는 볼턴이 이번 탄핵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표현했다. 볼턴이 출석할 경우 탄핵 조사에 응한 전·현직 당국자 중 최고위직 증인이 된다.
볼턴은 북한과 이란 등에 강경한 입장을 펼쳤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나 지난 9월 10일 전격 경질됐다. 방식도 ‘트윗 해고’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앙심을 품고 폭탄발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볼턴은 또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와 트럼프 후원자 출신인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대사 등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것을 간파해 이들의 공작을 저지하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7월 10일 올렉산드르 다닐류크 우크라이나 국가안보장관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벌어졌다. 다닐류크 장관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을 희망했고, 이 틈을 노려 선들랜드 대사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를 공식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 배후에는 줄리아니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트럼프 측근 인사들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볼턴은 바이든 부자 뒷조사를 이끌어내려는 비밀스러운 공작을 “마약거래”라고 비판했다. 또 “줄리아니는 모든 사람을 날려버릴 수류탄(hand grenade)”이라고 비난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줄리아니는 볼턴을 향해 “원자폭탄(atomic bomb)”이라고 맞받아쳤다.
볼턴의 청문회 출석 여부는 탄핵 조사의 중대 분수령이다. 현재로선 그가 증언대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볼턴이 청문회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의 치부를 공개할 경우 탄핵 조사는 엄청난 추진력을 확보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당국자들에게 하원 청문회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일부 당국자들은 증언대에 섰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에 나선 증인들의 증언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선들랜드 대사 같은 측근도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가 줄리아니를 우크라이나 정책에 대한 논의에 참여시키도록 지시했다. 그 지시에 실망했다”면서 등을 돌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백악관의 러시아 담당 보좌관인 팀 모리슨도 31일 증언에 나설 예정이다.
백악관의 경고 때문에 증언 여부를 고민하는 당국자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가운데 볼턴의 출석은 ‘증인 러시’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다만 볼턴이 청문회에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볼턴이 출석하더라도 맥 빠진 증언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볼턴을 너무 믿어선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