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낼 때였다. 당시 이단 문제가 심각했고 각종 소송도 빈번했다. 한국교회도 법률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초반 소송을 시작한 한 대형교회 소송도 옥신각신하며 끝나질 않고 있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임원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리고 한기총 안에 변호인단을 꾸리기로 뜻을 모았다. 기독교인 변호사 33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민족대표 33인이 떠올랐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기총 법률자문단이 조직됐다. 나름대로 활동을 잘했다. 변호사들도 적극적이었다. 그만큼 필요했다는 의미다.
나는 1년 임기를 마치고 한기총을 떠났다. 하지만 그만두고 나니 법률자문단의 역할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
교회 안에서 소송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교회법으로 다투는 척하다 결국 사회법으로 가는 분위기가 생기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교회 일을 놓고 사회법의 판결을 받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이 더 많았다. 무조건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시작하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법률자문단에 계시던 몇몇 변호사들과 상의했다. 그리고 교회 분쟁을 중재할 공식 조직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은 2008년 3월 21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창립이사회를 열었다. 교회의 각종 갈등과 분쟁을 화해조정과 중재로 해결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내가 이사장을, 당시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이던 피영민 목사가 부이사장을 맡았다. 초대 원장에는 대법관을 지낸 김상원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날 나는 화해와 중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회 문제는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화해중재원을 만들었습니다.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이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이 땅에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제 싸움보다는 화해합시다. 중재원이 그 중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화해중재원이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대법원으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아 공적 분쟁 해결기관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다만 중재 건수가 많지 않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원으로 오면 정말 편하다. 그런데 사람들 마음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법원으로 가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이런 분들에게는 주변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법원에 가서 시비를 가린 교회치고 상처받지 않은 교회가 있는지 세어보라고 하고 싶다. 큰 싸움은 반드시 큰 상처를 남긴다. 상처 없이, 나한테만 유리한 방향으로 싸우고 이길 길은 없다.
제발 시작도 끝도 없는 재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법원에서도 교회 송사를 싫어한다. 끝도 안 나고 서로 승복도 안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법원 재판 결과를 승복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대법원까지 송사를 한 교회 치고 온전한 교회는 없었다. 교인은 떠나고 교회는 갈라진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말씀의 전당이 소송의 전당으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이다. 미국의 화해 중재 역사는 오래됐다. 활용 빈도도 높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복음만 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싸우는 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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