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를 마치고 문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과 마주쳤다. 대입 개편을 물어오는 기자들에게 “약속 있어서 늦어서”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도 따라붙는 기자들에게 “네” “죄송하다” 짧게만 답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평소 언론친화적으로 평가받던 부총리의 낯선 모습이다.
유 부총리는 지난 1년 교육수장으로 재직하며 ‘꽃길’을 걸었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대입 정책은 전임자가 다 떠안고 갔다. 여야를 막론한 탄탄한 인맥과 문재인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여기에 사립유치원 사태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많은 학부모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박근혜정부가 포기했던 고교무상교육을 관철하는 과정 역시 그의 뚝심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한 교육부 관료는 “아마 다른 분이었다면 기획재정부나 교육감 설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립유치원 개혁’과 ‘고교무상교육’의 전리품을 들고 국회로 복귀하려던 유 부총리의 발목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잡았다. 국민적 공분이 대입 제도로도 옮겨붙자 꽃길이 가시밭길로 변하는 건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발표하는 과정을 뜯어보면 유 부총리가 여당의 이른바 ‘정시 확대론자’들에게 밀렸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주재한 교육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신뢰가 먼저 쌓인 후에야 (수시비중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정시가 능사는 아닌 줄은 알지만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고 말했다. 여당 내 ‘정시 확대 불가피론’ ‘한시적 정시 확대론’을 그대로 수용했다.
유 부총리는 곤혹스러운 처지다.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 후 처음 대입 개편 얘기를 꺼낸 건 지난달 1일 동남아 출국길이었다. 대통령 순방을 수행했던 유 부총리는 귀국 후 “정시 확대는 굉장한 오해고 확대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당정청 회의에서도 “정시 확대는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됐다. 시정연설 전날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유 부총리는 정시 확대 가능성을 일축했다.
청와대나 여당 주장처럼 유 부총리도 정시 확대 결정 과정에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면 유 부총리는 지난 두 달 동안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대통령 뜻과 달랐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교육부 패싱’을 시인하면 비난의 화살은 문 대통령을 향하게 된다.
교육부는 유 부총리가 여권 내 정시 확대론을 최근까지 눌러왔지만 결국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막지 못한 것이란 취지로 해명한다. 그나마 “유 부총리니까 여기까지 버텼다”는 반응도 있다. 문 대통령이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정시를 50%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여권의 정시 확대론자 요구 대신 ‘서울 일부 대학’으로 타깃을 한정한 부분은 유 부총리가 선방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교육부 관료는 “유 부총리가 아니었으면 9월 초에 정시 확대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유 부총리가 11월 대입 개편안, 고교체제 개편 등 중요한 정책 발표를 마무리한 뒤 12월 장관직을 던질 것으로 예상한다. 유 부총리 본인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출마를 안 한다고 말씀드린 적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유 부총리가 총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1월 16일까지 사직서를 내야 한다. 30일 기준으로 79일 남았다. 교육부 장관직을 공석으로 두긴 어렵다. 12월 중에는 후임자가 정해져야 뒷말 없이 나갈 수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