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정규직 급증’ 배경으로 지목하는 ‘통계 추가 조사’ 항목이 기존 조사에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늘어난 비정규직 86만7000명 가운데 약 35만~50만명은 추가 조사에 따라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존 조사에서도 비슷한 항목이 있어 ‘추가 질문’으로 대규모 인원의 ‘지위’가 바뀌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지난 29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서 비정규직 범위는 한시적, 시간제, 비전형 근로자다. 이 가운데 한시적 근로자는 기간제와 비기간제 근로자로 나뉜다. 기간제 근로자는 근로 계약기간을 정한 사람이다. 비기간제 근로자는 두 종류다. 근로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지만 계약의 반복 갱신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경우는 비자발적 사유(계약 만료, 일의 완료, 이전 근무자 복귀, 계절 근무 등)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이다.
통계청은 기존 조사에서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는가”만 물었고, 올해 3월과 6월 조사에서는 “없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고용 예상기간’을 추가로 물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 이동한 사람이 약 35만~50만명이라는 것이다. 서면 계약에는 고용기간이 없지만 구두 계약 또는 고용 여건 등을 유추해 응답자가 ‘있다’고 답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조사의 비정규직 범위를 보면 계약 기간이 없어도 ‘예상 기간’을 인지한 사람은 ‘비기간제 근로자’에 포함된다. 비기간제 근로자 범위에 계약의 반복 갱신에 따라 고용이 불안하거나 비자발적 사유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근로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존 조사의 정규직, 비정규직 여부는 응답자 대답과 함께 여러 질문 항목을 종합해서 결정했다.
결국 추가 조사를 하기 전의 ‘기존 조사’에서도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분류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관료는 “기존 조사에서도 기간을 정하지 않았지만, 반복 갱신으로 계약이 계속되고 있거나 비자발적인 사유로 계속 근무가 어려운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기존 조사가 더 비정규직 범위를 광범위하게 포착하고 있는데, 추가 조사로 같은 사람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35만~50만명이나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통계 논란으로 통계청 신뢰가 흔들린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계청은 추가 조사가 없는 ‘기존 조사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조사 방식 변경으로 통계의 시계열도 끊겼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계열을 변경하는 시점에는 정책의 효과를 분석할 수 있도록 과거 방식 통계, 변경된 방식 통계를 같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지난해에도 분배지표가 계속 악화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가계동향조사 표본을 개편했다. 같은 해에 선행종합지수(경기예측지표)도 바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계의 원 데이터는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조사 방식을 자꾸 바꾸는 건 일종의 범죄”라고 꼬집었다.
세종=전슬기 이종선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