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이 ‘디지털세’ 사정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디지털세는 이익을 얻는 나라에 ‘사업장’이 없어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을 겨냥한다. 구글, 애플 등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이 주요 대상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 논의에서 디지털세 적용 범위에 휴대전화·가전·자동차 등 기존 제조업 기업도 넣자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이 이달 초 ‘통합접근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OECD와 주요 20개국(G20)은 2020년까지 ‘디지털세’의 구체적 방식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국적 IT기업은 물리적 사업장이 이익을 얻는 ‘시장 소재지’에 있지 않아서 법인세 부과가 어렵다. 세율이 낮은 곳에 무형자산을 이전한 뒤 ‘시장 소재지’에는 로열티 등 사용 비용을 지급하는 조세회피 의혹도 받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제적으로 디지털세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OECD의 ‘통합접근법’은 적용 범위 확대에 초점을 둔다. 디지털 기업 외에 광범위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에도 디지털세를 매기자는 게 핵심이다. 전 세계 매출액을 기준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금융업과 1차 산업, 광업 등 일부 산업은 제외한다.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배경에는 자국 기업(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에만 과세를 한다는 미국의 반발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홍 기재부 국제조세제도과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도 원칙적으로는 소비자 대상 기업”이라며 “각론이 나와야 어떤 기준으로 과세하는지 알 수 있지만, 과세 대상에 들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OECD는 시장 소재지에 ‘사업장’이 없어도 매출 등을 근거로 과세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통상적인 이익을 넘어서는 다국적 기업의 ‘초과 이익’을 사업장이 없는 시장 소재지 국가에서의 매출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 소재지 국가도 다국적 기업에 세금을 매길 수 있게 된다.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세금을 내게 하는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도 거론된다.
정부는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디지털세 대상에 한국의 제조업체가 포함되지 않도록 OECD 논의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김 과장은 “(디지털세 논의는) 국제 조세체계의 판을 다시 짜는 것”이라며 “국제 조세체계의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OECD 사무국이 제안한 방안이 국내 산업과 세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