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해찬 대표, 조국 사태 송구하다고 말했지만…

입력 2019-10-31 04:01
인적 쇄신과 향후 국정 운영의 변화 의지는 안 보여…
청년들의 좌절감 깊이 살피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30일 조국 사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조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사퇴한 이후 보름 만에 처음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당내에서 당 지도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려 한다며 책임지는 자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표출되자 떠밀려서 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잇따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까지 포함하면 당정청이 모두 사실상 사과하는 모양새를 갖추기는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발언을 보면 당 쇄신이나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읽을 수 없다.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얘기도 없다. 정작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임명을 고민했으나 이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강력히 주장해 임명을 강행했다는 것은 여권 내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대표는 유감 표명 후 검찰 개혁을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 개혁은 중요하다.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많은 국민들은 고위 공직자의 위선과 심각한 불공정 그리고 곧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불법 혐의에 대해 실망하고 상처 받았다. 여권이 조국 사태를 검찰 개혁과 연관 지어 강조할수록 조국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조 전 장관을 감싸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핵심 친문 인사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아직도 조 전 장관을 비호하며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대표의 검찰 개혁 강조는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를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로 규정하며 정시 확대를 비롯한 교육 개혁을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검찰 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 보니 국민, 특히 청년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향후 국정 운영의 교훈으로 삼기 바란다. 검찰 개혁을 앞세워 불공정을 덮으려 했듯이, 어떤 정책이든 명분이나 이념에 얽매여 실용과 균형을 잃으면 안 될 것이다. 이 대표가 “이런 야당은 보다보다 처음 본다”며 자유한국당을 비판한 것도 유감을 표명하는 자리에서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조국 사태도 야당에 밀리지 않겠다는 정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바람에 악화된 측면이 있다. 집권여당에 야당은 파트너이고 설득 대상이다. 여야가 서로 경쟁하고 비판할 수 있지만 진영 싸움에서 벗어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책임은 여당에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