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재중] 지방분권 입법 서둘러라

입력 2019-10-31 04:03

국회가 ‘조국 국정감사’에 이어 검찰 개혁과 선거제도 관련 패스트트랙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중요한 민생·개혁 입법들이 방치되고 있다. 그중 지방분권 입법을 빼놓을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 이후 변화된 지방행정 환경을 반영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구현하고 지방자치단체 자율성 강화, 투명성 및 책임성 확보를 위해 30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지난 3월 국회에 제출했다.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사례는 많지만 중앙정부가 지방분권 실천 의지를 갖고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제출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전부개정안에는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의 33개 과제가 포괄적으로 담겼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주민이 지방의회에 조례 제정 및 개정·폐지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제 도입, 주민 감사청구 기준 완화(시·도 500→300명, 시·군·구 200→150명), 주민투표제 청구대상 확대, 주민소환제 개선 등이다. 또 풀뿌리자치 활성화를 위해 주민이 읍·면·동별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지자체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했다. 광역행정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특례시 등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 근거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도입하고 시·도의회 의장에게 의회 사무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부여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금은 시·도지사가 사무처장을 비롯한 의회 간부들을 임명한다.

나아가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한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주민 통제수단으로 주민소환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주민소환법 개정안을 별도 법안으로 제출했다. 인구 규모에 따라 주민소환 투표청구 요건을 차등화하고 전자서명을 이용해 편리하게 주민소환 투표청구를 할 수 있게 했다. 투표율에 따른 주민소환 투표결과 개표요건도 폐지했다. 재정분권을 위한 지방재정법, 지방세법 개정안과 중앙정부의 571개 사무를 지자체에 넘기는 지방이양일괄법 개정안도 제출돼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대부분 국회 상임위에 상정만 됐거나 논의가 부진한 상태다. 특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11월에나 법안심사소위가 열려 첫 논의가 시작된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 지방 4대 협의체장은 지난 29일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국회를 방문, 지방분권 법안들의 연내 처리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에 문희상 국회의장과 3당 원내대표들은 “기본적인 방향에 동의하고 이견이 없는 법안인 만큼 여야가 협의하여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중앙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국민이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방자치가 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의 추태는 여전해 지방분권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자격 없는 대표를 주민들이 언제든지 소환하고, 이들의 징계 등을 심사하는 윤리특별위원회를 지방의회에 설치토록 의무화하기 위해서라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지방분권 입법들이 통과되지 않으면 20대 국회 임기 내 처리는 사실상 어렵다. 결국 19대 국회에서처럼 임기만료로 법안들은 자동 폐기될 것이다. 이번에도 지방분권 입법이 좌절된다면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는 후퇴하고 말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풀뿌리 지방자치 역사가 길고, 지역 특성에 맞는 행정으로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 수준에 걸맞은 분권형 지방자치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제 정기국회가 한 달 남았다. 20대 국회가 지방자치 역사에 큰 이정표가 될 지방분권, 재정분권 입법을 완수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지켜봐야 할 때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