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비유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물어보는 ‘너희들’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예수님을 떠나간 ‘외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들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알고 죄 용서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외인들은 바닷가의 큰 무리입니다. 외인들은 귀신에게 자유로워지기 원하고 병이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의 환경이 나아지기만을 바랐습니다. 목적을 이루고는 곧 떠나가 버렸습니다.
마가복음 4장 3~8절에 나오는 비유는 눈에 보이는 결과 외에 다른 것을 알기가 어려운 비유입니다. 원인도 해결 방법도 모르는 불완전한 비유입니다. 하지만 비유에 대한 해석을 요청한 너희들이 있었습니다. 너희들이라고 불린 이들은 예수님 곁에 남아 비유의 뜻을 알기 위해 질문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 같은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예수님의 사역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을 시기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지금도 교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자신들의 경험이 다르고 자기가 주인공이 되지 않았다고 반대하고 시기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6절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육신의 필요만 채워지기를 바라고,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라는 외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필요가 채워지면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교회에도 이런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처음에 믿음이 있는 척 믿음을 얻고자 하는 척하지만 목적을 이루고 더 이상의 유익이 없을 것 같으면 소리 없이 떠나가는 말 그대로 나그네입니다.
본문 18절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만 육체적 유익이나 쾌락을 버리지 못하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때로는 영혼을 위해 살다가도 육체의 유혹에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직분자로 세워져 봉사의 일을 감당하기 마련입니다. 직분자로 세워지면 존경받고 지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받고 난 후에는 일은 하지 않고 직분도 내려놓지 않고 버티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봉사가 목적이 아닌 자신을 위해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원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본문 20절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평생을 어부로 살기 위해 배웠지만 전혀 다른 일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바꿨습니다.
삶을 바꾼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재산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배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면 평생 살아가는데 물질의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모와 가문의 기대를 포기할 것도 요구됩니다.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육체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있든지 없든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너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한 외인은 사람을 시험 들게 하고 실족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복되지 않은 삶은 오해를 불러오거나 믿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본문 말씀에서 비유한 네 가지 유형 중 세 가지가 길가나 돌밭, 가시밭에 있는 경우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를 더욱 엄격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믿음의 삶과 불신의 삶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세상이 교회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의 지적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온전한 일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서준백 사관(구세군남충주교회)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구세군남충주교회는 하나님께 중심을 드리는 삶의 고백을 중시합니다. 개인적인 신앙생활보다 크고 작은 일,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누며 이겨내는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생활을 중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