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감당해야 할 나름의 일과가 있다. 나이 성별 직업 등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순간이 모여 일상을 이루고,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순간, 매일의 일과를 잘 감당하는 것이 우리 삶 전체에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그의 인생이요, 그 자신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일과를 성실하게 감당했던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광야에서부터 목동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과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동으로서 성실했던 그 모든 일이 후일 그가 왕위에 오르고 왕업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즉 목동으로서 성실히 감당했던 일과가 왕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일의 일과를 맞이한다. 하찮은 일, 귀찮은 일, 껄끄러운 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어진 일들을 다윗처럼 견실하고 진실하게 감당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 왕업이 될 것이며 마침내 그 일이 모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골 3:23~24)
일과기도의 원칙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일과, 곧 하나님의 왕업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하나, 하루의 일과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일과의 주인이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아시며, 나아갈 바도 아신다.(시 139:3) 그러니 오늘 주어진 일과들을 먼저 하나님께 아뢰라.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오늘 있을 일을 종알대며 이야기하듯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모든 일이 다 끝난 뒤 하나님께 통보하기보다는 그 모든 일에 주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으며 미리 기도로 준비하라. “기도를 제외한 준비는 준비가 아니다. 충분히 준비한다는 것은 곧 충분히 기도한다는 말이다.”(피러스 12세)
둘, 일과의 우선순위를 구하라.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다는 손님들을 위한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얼마나 바빴던지 예수님 말씀을 듣던 마리아도 불러내려 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17세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이 장면을 ‘마르다와 마리아 집의 예수님’(그림 참조)에서 실감 나게 묘사한다. 그림 속 예수님의 손을 보라. 그 손은 어디를 향하는가. 바로 마리아를 가리킨다. 마르다를 향해 “마리아처럼 하여라”고 하신 것이다. 본문은 결코 마르다의 수고를 폄하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진정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그 일부터 하라고 한다. 곧 나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다.
셋, 일과 가운데 주의 성품과 뜻이 드러나기를 구하라. 사람들은 큰일, 많은 일을 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 일에 내 욕망과 탐욕이 가득하다면, 그 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고 아파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행했는가, 곧 마음의 순전함을 귀하게 여기신다.(시 51:10) 따라서 주어진 모든 일과는 빛의 자녀로서(마 5:3~12, 엡 5:9) 주의 성품과 뜻 가운데 감당해야 한다. “일은 보일 수 있게 만들어진 사랑이다.”(칼릴 지브란)
넷, 일과를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구하라. 인생이 우리의 계획에 달려 있지 않듯, 일과도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이 수고하면 사람이 수고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내 노력과 수고에 비할 수 없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이 많고 어렵다고 좌절하지 말고 능히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구하라. 하나님께서 넉넉히 주실 것이다.(약 1:5)
휘파람을 불며 일하자
1960년대 모든 것이 궁핍하던 시절 이야기다. 당시 필자의 할머니는 산과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캐어 시장에 팔곤 하셨다. 그렇게 교회 헌금을 하고 손주들 용돈도 챙기셨다. 식구들은 그런 모습이 창피하다며 만류했지만,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성경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다. 사지가 건강한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 이 일은 너무나 복된 일이다.” 하루는 지나가던 길에 시장 한구석에서 나물을 파시던 할머니를 봤다. 찬송을 흥얼거리며 일하고 계셨다. 저녁때 필자는 할머니께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찬송하며 일하냐고 여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기막힌 대답을 하셨다. “살기 어려워 찬송하는 거야. 기도하고 찬송하면 기뻐하게 된단다.” 어디 필자의 할머니뿐이겠는가. 삶을 살아가는 누구의 일과든 녹록지 않다. 고단하고 어려운 일로 가득하다. 그럴수록 기도로 일과를 준비하자.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 곧 왕업으로 여기며 즐거이 노래하며 감당하자. 그리할 때 주님께서 그 모든 일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다.
“왕업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휘파람을 불며 일한다.”(유진 피터슨)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