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미 동맹 위기관리 각서 ‘미국 유사시’ 문구 제안 의도는?

입력 2019-10-30 04:04
정경두 국방부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 한반도 위기 상황과 대응 방안을 규정하는 군사비밀 문서에 ‘미국 유사시’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최근 한국 측에 제안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이 북한군 도발뿐 아니라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의 미국 안전에 위협을 주는 상황에까지 한·미 군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근거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미 군 당국은 2012년 4월 18일 ‘동맹 위기관리 합의 각서’를 체결했다. 각서에는 북한군 국지 도발을 포함해 한반도 위기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미 군 역할이 규정돼 있다. 최근 한·미 군 당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를 감안해 이 각서를 개정하는 협의를 진행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동맹 위기관리 합의 각서’ 초안을 만드는 중이다.

미국 측은 ‘한반도 유사시’라고 기존 각서에 명시돼 있는 한·미 연합 위기관리 범위에 ‘미국 유사시’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한국 측에 제시했다. 군 관계자는 29일 “지난주 한국 합동참모본부 대령급 참모 등이 참여하는 미국 측과의 실무협의에서 나온 얘기”라며 “미국 측 제안은 우리 군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이 굳이 ‘미국 유사시’라는 문구를 넣으려는 의도는 안갯속이다. 기존 ‘한반도 위기시’라는 문구는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이 공격받는 상황에 대비한다는 개념을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반도 밖 미군의 군사 위협에까지 한·미 연합군이 공동 대응토록 하는 장치를 만들려고 새로운 문구를 추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른다.

군 일각에선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한 중동 지역이나 남중국해에서 이뤄지는 ‘항행의 자유’ 작전 등 미국의 군사작전에 한국군을 끌어들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한·미 군의 공동 대응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지 않은 채 한·미동맹 차원의 한국군 임무를 확대하기는 어렵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는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라고 돼 있다.

다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군사작전에 한국군 참여를 끌어내려고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배치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의 움직임 등을 식별, 대응하는 데 한국군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골적인 ‘동맹 청구서’를 또 들이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