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좌판·연탄 배달하며 아들 대통령으로 키운 어머니

입력 2019-10-30 04:02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모친 강한옥 여사의 별세를 지켜본 뒤 전용차량에 올라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29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현직 대통령이 부모 어느 한쪽의 상을 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청와대는 노영민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평상시와 다름없는 근무 상태를 유지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 달 초 태국에서 열릴 예정인 아세안+3(한·중·일) 회의 등 해외 회의 참석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강 여사 타계 소식을 전하면서 “문 대통령은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3일장으로 가족과 차분하게 치를 예정”이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전했다. 애도와 추모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 여사는 이날 오후 7시10분쯤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쳤다. 강 여사는 최근 노환으로 신체 기능이 떨어져 부산 메리놀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아 왔다. 빈소는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 꾸려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뒤 오후 3시20분쯤 부산으로 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병세가 깊어진 모친을 자주 찾았다. 지난 26일에도 헬기로 부산으로 이동해 건강 상태를 살폈다.

문 대통령은 실향민으로 낯선 부산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여러 차례 나타냈다. 2017년 1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통일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흔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고향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제 친가 쪽은 할아버지의 여섯 형제 자식들이 피난 왔지만, 외가 쪽은 어머니 한 분만 내려오셨다”며 “어머니 빼고 우리 외가 분들은 아무도 못 내려왔기 때문에 외가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했었다. 강 여사는 2004년 7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10차 이산가족 단체상봉에서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함께 북측의 여동생을 만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남북 화해에 힘을 쏟은 것도 이런 가족사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많다.

2016년 12월 25일 성탄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강 여사와 함께 집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강 여사는 남편 고 문용형씨와 함께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젖먹이였던 큰딸을 데리고 월남했다. 2남3녀 중 둘째이자 장남인 문 대통령은 경남 거제도 피난살이 중 태어났다. 문 대통령 부친이 양말 도매상 등 사업에 실패하고, 가세가 기울자 강 여사가 가족 7명의 생계를 책임졌다. 시장 좌판에서 구호물자 옷가지를 팔거나 연탄 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문 대통령이 전한 어머니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암표 일화’도 생계 때문이었다. 강 여사는 생활고로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부산역에서 암표 장사가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암표 장사를 해보려 마음먹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 대통령을 데리고 이른 새벽 부산역에 나왔지만 아들 앞에서 암표 파는 모습을 차마 보여주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1970년대 반독재 시위로 구속됐을 때는 옥바라지를 했다. 문 대통령이 75년 경희대 재학 시절 유신 반대 시위로 경찰에 구속됐는데, 검찰로 이송되는 호송차를 강 여사가 따라 달려가며 “재인아! 재인아!”라고 소리쳤던 일화도 있다. 강 여사는 78년 남편이 작고한 뒤 40여년을 홀로 지냈다.

강 여사는 대통령 선거 직전인 2017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아들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음 변할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임성수 박세환 기자, 부산=윤일선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