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얼굴도 안보겠다는 북, ‘금강산 철거’ 실무회담 거절

입력 2019-10-30 04:03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지난 25~26일 열린 회의 소식을 2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문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실무회담 제안을 하루 만에 거절했다. 남북 경제 협력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남북 간 대화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통일부는 29일 “오전에 북측이 금강산국제관광국 명의로 통일부와 현대아산 앞으로 각각 답신 통지문을 보내왔다”며 “북측은 시설 철거 계획 및 일정과 관련해 우리 측이 제안한 별도의 실무회담을 가질 필요 없이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할 것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남측과의 실무회담을 거절한 것은 당분간 대면 접촉조차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직접 지시한 만큼 금강산과 관련해서는 철거 외에 다른 방안은 일절 논의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는 전날 북측에 실무회담을 열어 철거 문제를 포함한 금강산 관광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했고, 현대아산도 금강산 관광지구의 ‘새로운 발전 방향’에 대한 협의를 제의했다.

북한은 남북 대화가 더 이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대화 자체를 중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는 지난해 9월 남북 정상 간 합의사항이며,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직접 ‘조건 없는 재개’를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확언한 사안이 1년 넘게 진척되지 않는 상황을 용납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남측으로부터 더 큰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적 압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원산·갈마지구도 제 힘으로 완성하지 못하는 북한이 금강산을 독자 개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철거 위협 한 마디에 정부가 개별관광 허용 움직임을 보이는 걸 보며 더 강한 압박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공개한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모습. 외금강호텔 내부의 천장과 벽지가 뜯겨져 있고(위 사진), 이산가족면회소 안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다(아래). 연합뉴스

정부는 일단 북한과의 대면 접촉을 계속 시도할 방침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당국 간 만남이 필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사업자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대응 방향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남·대미 비판과 압박 수위도 계속 높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정권 2인자인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남(남북) 관계가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이 외세의존 정책과 사대적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5∼2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회의에 참석한 최 상임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최 상임위원장은 미국을 향해서도 “지금 조선반도(한반도) 정세가 공고한 평화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촉즉발의 위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며 “조미(북·미) 관계가 전진하지 못하고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 격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달리며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를 일삼고 있는 데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이 우리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 조치를 취할 때에야 미국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승욱 손재호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