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각료들의 잇따른 실언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최근 경제산업상이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의혹으로 사퇴한 후 아베 총리가 부랴부랴 사죄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문부과학상과 방위상의 잇단 설화로 또다시 비판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29일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각료들의 설화에 대해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긴장하고 진지하게 대처해가겠다”고 사과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상은 지난 24일 위성방송 ‘BS후지’에 출연해 대학 입시에 민간 영어시험을 도입하는 정책의 불공정 우려에 대해 “자신의 분수에 맞춰 승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교육정책 수장이 빈부격차가 입시에 반영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일본은 내년도 대입부터 영어 과목을 토플(TOEFL) 등 민간시험 점수로 대체한다. 고3 재학 중 4~12월 사이에 응시한 2회의 시험 성적표를 대학에 제출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1~2학년 때 연습 삼아 보는 시험 횟수는 제한이 없다. 시험을 많이 경험할수록 고득점에 유리한데 수험료가 만만치 않아 경제적 격차가 입시에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험장이 주로 대도시에만 있는 것도 지방 학생에겐 부담이다. 하기우다 문부상은 방송에서 사회자가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혜택 받은 학생이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렇게 말한다면 ‘입시학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다 교활하다’는 말과 다름없다”면서 “부잣집 자녀가 여러 번 시험을 치러 워밍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키(분수)에 맞춰 두 번을 선택해 승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교육의 기회 균등을 규정한 교육기본법에 어긋나는 문제 발언”이라고 지적했고,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문부과학상으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비판이 확산되자 하기우다 문부상은 28일 “수험생에게 불쾌한 생각을 줄 수 있는 발언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29일에는 “‘분수’ 발언을 철회한다. 사죄드린다”며 바짝 엎드렸다.
고노 다로 방위상은 28일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나는 지역에서 ‘비의 남자’라고 자주 불린다. 내가 방위상이 되고 나서 벌써 태풍이 3개”라고 말했다가 비난에 직면했다. 자위대원의 노고를 위로하는 이야기 도중 농담한 것이지만 태풍으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된 상황에서 경솔했다는 지적이다.
고노 방위상 발언에 대해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은 “(태풍을) 농담 소재로 이용하는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고노 방위상은 29일 “재해 현장에 파견된 자위대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하고 “불쾌하게 느낀 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아베 총리에게도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