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눈높이 맞춘 ‘건강한 中企 일자리 점수 기준’ 나왔다

입력 2019-10-30 04:04

‘괜찮은 일자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A라는 기업이 있다. 평균 연봉은 3240만원, 회사는 서울에 있다. 중소기업 금형산업계 상위 10%에 들 정도로 성장성이 높은 편이다. 임직원 수가 79명, 연간 영업이익은 29억원 정도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고용안정성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B기업은 평균 연봉 3176만원으로 경남 지역에 위치해 있다. 임직원은 128명, 영업이익은 24억원 정도다. 성장성은 중소기업 금속산업계 상위 20% 정도다. 주거와 관련한 복리후생이 마련돼 있고 고용안정성도 탄탄하다.

비슷해 보이지만 중소기업중앙회가 29일 발표한 ‘건강한 일자리 가이드’에 따르면 B기업이 A기업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용안정성의 차이에 따라 B기업이 ‘더 괜찮은 일자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가이드는 중기중앙회와 유병준 서울대 교수팀이 청년들의 선호도와 전문가 의견 등을 감안해 7가지 기준을 토대로 만들었다. 급여수준, 근로시간, 회사의 성장성(매출액·부채비율), 회사의 안정성(업력·사원수·영업이익), 대중교통 편리성 등 객관적 측정이 가능한 5가지 요소가 포함됐다. 여기에 고용안정성과 복리후생까지 고려해 점수를 내면 건강한 일자리에 대한 계량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실제 중소기업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임금 업력 성장성 등 어느 한두 가지 요소만 좋아서는 최고 등급의 일자리로 평가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방소재 기업이라도 요소별 점수를 고르게 얻으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괜찮은 일자리를 점수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 요소는 임금 수준이다. 급여가 비슷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복리후생이나 고용안정성이 중요하게 다뤄지겠지만 임금이 월등히 뛰어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만 이 가이드에 조직문화는 고려되지 않았다. 기업 곳곳에서 ‘직장 갑질’에 대한 호소가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이를 수치화해 반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에도 여전히 직장 갑질이 이뤄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최근 직장 갑질을 경험했다’(69.3%)고 답했다. 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6일 이후에도 직장 갑질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3명(28.7%)꼴이었다.

괴롭힘 유형은 ‘업무과다’(18.3%) ‘욕설, 폭언’(16.7%)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15.9%) ‘행사, 회식참여 강요’(12.2%) ‘사적용무, 집안일 지시’(8.6%) ‘따돌림’(6.9%) ‘업무배제’(6.2%) ‘성희롱, 신체접촉’(5.4%) 등 순으로 나타났다.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진다고 업무 도중에 청소기를 돌리라고 했다” “향수 사용에 대해 지적한다” 등의 증언도 있었다.

직장인들이 인권을 중요시하면서 괜찮은 일자리를 따지는 조건에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조직문화’를 가졌는지도 중요하게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