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네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웃으면서 올라왔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나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프로 통산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 듯 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배영수(38)의 목소리는 한 치의 아쉬움도 묻어나지 않았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한화 이글스를 거쳐 올 시즌 두산 베어스에서 뛰면서 20년간 총 138승(122패 3세이브)을 거둔 프로야구 현역 최다승 투수 배영수가 은퇴한다. 배영수는 29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장 먼저 삼성팬들께, 그리고 한화와 두산 팬들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본인의 표현대로 배영수의 선수 생활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에서 끝났다. 배영수는 지난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10회말에 등판해 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등판 당시 겨우 두 점차(11-9)로 긴장할 법도 했지만 베테랑의 관록을 증명하듯 웃는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배영수는 2000년부터 1군 무대에 데뷔했다. 2001년 169⅔이닝을 던져 13승(8패) 평균자책점 3.77의 호성적을 거두며 삼성의 선발 로테이션 자리를 꿰찼다.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로 수많은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생애 최고의 성적을 남긴 해는 2004년이다. 정규시즌 17승(2패) 평균자책점 2.61으로 각각 통산 최고 기록을 남겼다. 그해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10이닝 동안 노히트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타선이 득점을 올리지 못해 노히트노런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은 그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배영수는 당시 “상대가 향후 30년은 일본을 이길 수 없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이겨버리고 싶다”는 발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일본의 영웅 스즈키 이치로의 엉덩이에 고의로 공을 맞혔다. 국민들은 그에게 ‘배열사’라는 별명을 안기며 환호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배영수였지만 2007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긴 재활을 거쳤다. 2007시즌을 건너뛰고 2008년 1군무대로 돌아왔지만 2011년까지 4점대 이상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2012~2013년 두 시즌 총 26승을 올리며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2015년 한화로 이적한 뒤 올해 두산에서 한 시즌을 뛰고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배영수는 “프로생활 중 아쉬운 순간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올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한 경기로 모두 털어버렸다”며 흡족해했다. 그는 “삼성 시절이던 2002년 프로 통산 첫 우승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때 우승 맛을 봐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 밖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경기로는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2006년 한화와의 한국시리즈(5경기 2승 1홀드 1세이브 0.87), 2010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 세이브 순간을 꼽았다.
두산은 은퇴를 결심한 그에게 코치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영수는 “김태형 두산 감독님께서 제안을 해주셨는데 여러 가지로 생각 중”이라며 “코치직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고 전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