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87만명 급증… 정부가 시장 못이겼다

입력 2019-10-30 04:03

‘비정규직 제로’를 공약한 정부의 고용 정책은 경기 침체에 빠진 시장 앞에서 무력했다. 정부가 줄이겠다고 공약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올해 들어 전년 대비 86만7000명이나 늘었다. 비정규직 증가 규모는 문재인정부 첫 해와 이듬해에 1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가 돌연 급증세로 돌아섰다. 반대급부로 정규직은 줄었다. 정규직이 감소세를 보이기는 15년 만에 처음이다.

고용기간이 정해져 있는 비정규직인 ‘기간제근로자’가 크게 증가했다. 정부는 통계 조사 항목을 추가하면서 정규직으로 분류되던 비정규직 일부가 기간제근로자로 편입됐다고 본다. 이 수치가 최대 50만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증가 폭이 너무 크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하락, 경기 부진에 빠진 시장에서 비정규직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통계청은 29일 ‘경제활동인구 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지난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이 전년 대비 86만7000명 증가한 748만1000명이라고 집계했다. 비정규직 규모가 700만명을 넘은 것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1년 사이에 지나치게 많이 증가했다. 전년 대비로 10만명을 웃돌던 비정규직 증가 폭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8월 9만7000명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8월에는 3만6000명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이 수치가 치솟았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도 36.4%로 12년 만에 최대치에 이르렀다.

여기에다 정규직 감소를 동반했다. 정규직 근로자 수는 1307만8000명으로 전년(1343만1000명)보다 35만3000명 줄었다.

정부는 ‘비정규직 참사’의 주요 원인을 통계 조사 문항 추가에서 찾는다. 올해 조사부터 플랫폼 근로자 등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을 솎아낼 수 있도록 병행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올해 조사에서 비정규직 중 기간제근로자가 전년 대비 79만4000명 증가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기간제근로자에 추가로 포착된 이들이 35만~50만명 정도”라며 “이 때문에 올해 통계와 지난해 통계를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 50만명이라는 변수를 빼도 비정규직이 36만7000명이나 늘었다. 정부 주도로 정규직화에 앞장서 왔던 공공부문까지 증가세다.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년 대비 4만2000명 늘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경기 상황이 반영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0%에 턱걸이하기도 힘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침체와 한국의 고용 경직성이 원인”이라며 “결국 기업이 활성화돼야 좋은 일자리가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이종선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