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착시 감안해도 36만7000명↑… 설명 안되는 일자리 참사

입력 2019-10-30 04:06

올해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이 전년 대비 86만7000명 늘었다. 200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다. 정부는 이 가운데 35만~50만명이 추가 조사 때문에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가 바뀌었다고 본다. 이 주장을 감안해도 비정규직은 36만7000명이나 늘어난 게 된다. 지난해 증감폭(3만6000명)의 10배다. 노인·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단기 일자리를 10만~15만개로 추산해도 약 20만개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해도 ‘일자리 질(質)의 악화’라는 우려는 지워지지 않는다.

통계청은 29일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발표하고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은 748만1000명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비정규직 규모는 661만4000명이었다. 정부는 비정규직 급증 배경에 ‘통계 추가 조사’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조사는 표본 가구를 대상으로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는가”에 대해서만 물었다. 이 질문에 “없다”고 답한 사람은 정규직으로 분류됐었다.

통계청은 올해 3월과 6월 조사 때 질문을 추가했다. “없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고용 예상기간’을 물었다. 이 추가 질문에서 “예상되는 기간은 있다”고 말하면 비정규직(기간제 근로자)으로 분류했다. 이렇게 해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류 이동한 사람이 약 35만~50만명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통계청 해석은 3가지 오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선 35만~50만명은 추정치다. 통계청은 매월 36분의 1을 바꾸는 표본을 제외하고, 올해 3~8월 계속 응답을 한 표본 가운데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류가 바뀐 사람을 추정했다. 이 추정 규모가 정확하다고 보기 힘들다.


여기에다 고용 예상기간이 ‘있다’라는 응답이 자의적일 수 있다. 서면 계약에는 고용 기간이 없지만, 구두 계약 또는 고용 여건 등을 유추해 응답자가 ‘있다’고 답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때문에 추가 질문을 뺀 통계를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질문을 추가로 한 만큼 그것을 뺀 수치도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다.

또한 35만~50만명이라는 숫자를 감안해도 비정규직 급증을 설명하기 어렵다. 통계 변수를 제외해도 비정규직은 전년 대비 36만7000명 증가했다. 이 수치 또한 2004년(78만5000명) 이후 가장 크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급증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단기 일자리 정책을 지목한다. 정부는 고용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 노인·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다만 단기 또는 시간제 일자리인 ‘비정규직’이 많다. 이런 형태의 정부 직접 일자리 증가 폭은 전년 대비 약 10만~15만개로 추측된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는 올해 61만개, 지난해 51만개였다.

‘통계 변수’ ‘정부 일자리 효과’를 반영해도 비정규직 증가 폭에서 약 20만명이 남는다. 설명이 되지 않는 숫자다. 결국 민간의 일자리 질이 나빠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시행 등으로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 쪼개기’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직접 고용’이 이뤄졌지만, 민간 부문으로 전파되지 못했을 확률도 높다.

2%대 성장도 어려운 경기 부진이 비정규직 증가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통계 수치는 정확히 정책 결과를 반영하고 있다”며 “추가 조사를 했으면 그것을 뺀 통계도 공개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통계’가 아니라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