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31일 탄핵조사 표결… 증언거부 차단·상원 흔들기 ‘포석’

입력 2019-10-30 04:03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히틀러에 빗댄 인물화와 ‘트위틀러’라는 문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처음 시카고를 방문했는데 민주당 강세 지역인 시카고보다 아프가니스탄이 더 안전한 곳이라며 치안 문제 등을 비난해 논란을 야기했다. AP연합뉴스

미국 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공식화하는 전체 표결을 오는 31일 실시키로 했다.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인 만큼 이 투표는 가결될 것이 확실시된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8일(현지시간) 민주당 하원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번 전체 표결은 6주 동안 진행돼온 탄핵 조사를 확정하고, 향후 청문회 공개를 승인하며 이미 나왔던 증인들의 증언사본 공개 방식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 표결은 탄핵 조사가 불공정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불식시키는 법 절차”라고 강조했다.

하원의 표결 결정에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조사가 표결 없이 추진돼 불법이라고, 비공개 조사가 이뤄져 방어권을 제한받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표결을 수용한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절차 문제로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하겠다는 목적이 가장 크다.

탄핵 조사의 장애물을 없애겠다는 고려도 있다. 찰스 쿠퍼먼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이날 하원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민주당은 투표를 통해 법적 시비를 차단해 자료 제출과 증언 거부 등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전략이다. 증언을 거부하면 의회모욕죄 적용도 고려하고 있다.

민주당의 다른 목표는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압박이다. 이번 투표는 ‘트럼프 탄핵’과 관련해 처음 이뤄지는 투표인 동시에 표결 결과가 공개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투표는 ‘탄핵 조사 절차’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지만 탄핵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묻는 대리투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표를 던지는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유권자들에게 ‘탄핵 반대론자’로 비칠 수 있어 고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WP는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양심’과 ‘정치적 계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흔들리는 것은 탄핵 정국의 엄청난 변수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하원 전체 의석의 과반 찬성과 상원 전체 의석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 통과는 어렵지 않지만 상원은 전체 의석 100석 중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이 47석이어서 통과가 쉽지 않다. 최소 상원의원 67명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보루는 상원인 셈이다.

WP에 따르면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지쳐가는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에 불리한 증언들이 쏟아지는데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백악관은 공화당에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도 부담이다.

더 본질적인 고민도 있다. 내년 11월 3일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 실시되는 상원의원 선거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인데, 2년마다 전체 의석 3분의 1을 새로 뽑는다. 자칫 ‘트럼프 방어’에만 몰두하다가 ‘반(反)트럼프’ 바람이 확산돼 내년 선거에서 상원을 민주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반트럼프’ 바람이 불 경우 상원의원 자리가 위태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탄핵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력이 아직 단단하고, 조사에서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실책을 거듭할 경우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