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 이후 줄곧 예매율 1위를 기록 중인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소설에 이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 평점은 남녀 성(性) 대결 양상을 띠고 온라인에선 “세상의 많은 김지영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란 의견과 함께 “사회 혼란만 야기하며 유난 떠는 페미니스트 영화”라는 비난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 통계를 대입해보면 영화 속 김지영을 마냥 뜬구름 잡는 인물로 단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취업, 경력단절, 베이비시터 문제 등 김지영이 영화 속에서 겪은 여러 에피소드를 2018년 여성가족부의 여성 통계상 나타난 한국 여성의 현실과 비교해봤다.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김지영은 지난해 기준 50.9%의 여성 취업률(여성가족부 통계)을 뚫었다. 그러나 결혼 및 출산과 함께 20.5%의 경력단절 여성이 된다. 작년 4월 15~54세 기혼여성 900만5000명 중 184만7000명이 경력단절 여성인데 연령대로 나누면 38세 김지영이 속한 30~39세의 비중이 48.0%로 절반에 달한다. 경력단절 사유 1~3위가 김지영이 겪은 결혼, 육아, 임신 및 출산이다.
재취업을 꿈꾸던 김지영은 아이를 맡길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포기한다. 김지영이 “엄두도 못 낸다”고 말한 아이돌봄서비스는 2017년 8만1000가구가 신청했지만 1만8000가구(22.2%)가 아이돌보미를 연계받지 못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8년 아이돌봄서비스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를 보면 서비스 이용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두 번째로 많은 답이 ‘서비스 연계까지 오래 걸려서’였다.
결국 김지영의 남편 대현이 육아휴직을 알아보지만 동료들이 만류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육아휴직 한 남성은 1만2000명으로 13.4%의 참여율을 기록했다. 40%가 넘는 북유럽 복지국가와 상당한 격차다. 대현의 동료들은 “육아휴직 갔다오면 네 책상이 빠져있을 것”이라고 한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못 쓰는 주된 이유로 승진 누락과 핵심 업무 제외, 직책 박탈 등이 꼽힌다.
김지영의 주변도 김지영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어린이집 엄마들 모임에 간 김지영은 그곳에서 처지가 비슷한 서울대 공대 출신 엄마, 연극영화과 출신 엄마를 만난다. 이들은 수학문제를 풀며 마음을 다스리거나 아이 동화책을 읽어줄 때 전공을 살린다고 말한다. 여가부에 따르면 2018년 여학생 대학진학률은 73.8%로 남학생(65.9%)보다 높지만 여성 취업자 중 대졸 이상 비중은 43.8%로 남성 비중(48.8%)보다 낮다.
김지영이 동경하는 회사 선배 김 팀장은 출산 한 달 만에 복직한 ‘철의 여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를 보면 첫째 자녀 임신 직전 취업 중이었던 기혼여성 중 40%만 출산휴가를 썼다. 그런 김 팀장도 남성에 밀려 승진을 못해 새 회사를 차린다. 회사 내 여성 차별을 의미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중 29위 꼴찌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남성의 생계부담을 덜어주려면 자신의 아내가 일해야 하고 이는 또 다른 김지영인 셈”이라며 김지영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김지영을 한 여성이 겪는 특별한 일로 볼 게 아니라 인권과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며 “여기에 대한 남녀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