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장지영] 모든 문제가 페론주의 탓인가

입력 2019-10-30 04:03

TV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는 이탈리아 단편동화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작품 속 배경인 19세기 말 마르코 엄마를 비롯해 수많은 유럽인이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농축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1913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미 최초의 지하철이 건설되는 등 20세기 전반 아르헨티나는 경제력 면에서 세계 5위 수준의 강국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다.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것도 30차례에 육박하며 디폴트(국가 부도) 선언도 9차례나 있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만성 위기에 처한 주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이 ‘페론주의’다.

페론주의는 1946~1955년, 1973~1974년 대통령을 지낸 후안 도밍고 페론에서 따온 이념이다. 외국 자본 배제와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페론의 아내였던 에비타 페론은 복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페론주의 아이콘이 됐다.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는 이 페론주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가 이뤄진 1983년 이후 10명의 대통령(임시직 포함) 중 7명이 페론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메넴(1989~1999년), 에두아르도 두알데(2002~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03~2007년)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2007~2015년)가 대표적이다. 지난 27일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온건한 페론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강력한 긴축정책을 폈다. 이에 비해 페르난데스는 통화확대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칫 국가 재정이 더 악화될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에서는 페론주의를 무분별한 복지 정책으로 국가를 파산시킨 ‘절대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페르난데스의 집권 기사는 온통 부정적이다.

하지만 페론주의에 대해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구미에서도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976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의도적으로 페론주의를 폄훼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르헨티나의 경제 파탄은 페론주의가 아니라 군부 집권 시절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페론 집권 시절부터 군부 집권 이전까지 아르헨티나의 국민총생산은 127%의 성장을 기록했다. 페론 집권 시절 어느 정권보다 많은 산업 투자가 이뤄졌다. 개인소득이 232% 증가하면서 극빈층은 줄고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됐다. 반면 군부 집권 시절 무분별한 외자 및 다국적기업 유치는 아르헨티나에 독으로 돌아왔다. 이익을 챙긴 해외 자본과 다국적기업이 빠져나가자 천문학적인 외채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1976년 78억 달러였으나, 1983년 450억 달러로 증가했다. 중산층은 붕괴되고 빈곤층은 급증했다.

특히 군부 출신 첫 대통령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꼽힌다.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비델라 정권의 탄압으로 수만명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것은 논외로 치자. 비델라는 경제 위기로 인한 국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1978년 FIFA 월드컵을 이용했는데, 비용 마련을 위해 자국의 알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헐값에 매각함으로써 경제난을 심화시켰다.

비델라의 후임자인 군부 출신 대통령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영국과 무모한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 20억 달러가 넘는 전쟁 비용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결정타를 맞았다. 덕분에 그가 물러날 때엔 빈곤율이 74%에 달했다. 군부가 물러나면서 민간 정권에 남긴 것은 거덜난 국가였다. 이후 대통령들의 과제는 바로 그 수습이었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