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당시 8년간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미국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로 8년을 지내며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포로로 갇힌 동료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구출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한 무리는 낙관적인 태도로 위기 상황을 바라보며 빠른 시간 내에 구출될 것이라고 믿었고 다른 한 무리는 현실적인 태도로 위기 상황을 바라보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구출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제임스 스톡데일이 목격한 현장은 다름 아닌 낙관적인 태도를 지녔던 동료들은 죽어 나갔고 현실적인 태도를 지녔던 동료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구출되는 것이었다.
‘컵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라는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연 이 말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포로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죽어 나가야만 했을까?
세상의 모든 사람은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세 가지의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첫 번째는 위기 상황을 (현실보다) 좀 더 긍정적으로 보며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고, 두 번째 전략은 위기 상황을 (현실보다) 좀 더 부정적으로 보며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전략은 위기 상황을 현실 그대로 직면하며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각각의 전략은 나름대로 합리적 추론과 논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전략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라면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좋게라도 생각하자’라는 심보이고, 두 번째 전략은 ‘더 나쁜 상황을 선제적으로 생각해보며 (적어도) 더 나쁜 상황은 막아보자’라는 고도의 심리적 계산을 담고 있으며, 세 번째 전략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라 할지라도 차후를 위해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보자’라는 대책이다.
최근 유행하는 긍정심리학의 영향으로 우리는 첫 번째 전략을 가장 좋아한다. ‘그 사람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참 좋더라’라는 말로 우리는 좀 더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아들을 좋아한다. 두 번째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세 번째 전략을 쓰는 사람 역시 ‘그 사람 너무 현실적이야’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전략을 애써 배우고 실천하려고 한다.
이 세 가지 전략 중 어떤 전략이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심리학자들은 지난 30년간 수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신기하게도 심리학에서 진행한 최근 연구들은 ‘더 긍정적인’ 첫 번째 전략도, ‘더 부정적인’ 두 번째 전략도 아닌 ‘현실적인’ 세 번째 전략이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 부정적인’ 두 번째 전략은 말할 것도 없이 ‘더 긍정적인’ 첫 번째 전략 역시 우리에게 실패와 불행을 선물한다고 한다.
제임스 스톡데일이 목격한 현장은 사실이었던 셈이다. ‘더 부정적인’ 두 번째 전략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이유는 자명하다. 매사에 걱정과 고민을 하며 자기방어적인 태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 어찌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런 부류의 사람은 성취동기가 낮고 쉽게 낙담할 수밖에 없다. 그럼 ‘더 긍정적인’ 첫 번째 전략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애써 현실을 부인하고 회피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노력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 부적응을 초래하여 쉽게 우울증을 경험하게도 한다. 현실이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명 안경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직시하는 태도이다. 현실을 회피해서도 안 되고, 현실을 장밋빛 안경 너머로 보아서도 안 된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