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 곳곳서 좌초… 제주는 더 이상 中 자본 원치 않는다

입력 2019-10-29 04:06 수정 2019-10-29 11:35
5조2000억원 투자 유치로 화제를 모았던 제주 오라관광단지 조감도. 중국 화륭그룹이 제주시 오라마을공동목장 등 357만5753㎡를 사들였지만, 개발계획만 내놓고 자본검증 실패와 환경영향평가 부결 위기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제주도 제공

참빗살나무 단풍이 한라산을 수놓는 가을, 제주는 스산한 계절을 맞고 있다. 외국자본에 의해 곳곳에서 진행되던 대규모 개발공사가 중단되면서 짓다만 건물로 채워지고 있어서다.

제주는 2002년 ‘국제자유도시’의 기치를 들었다. 2006년 특별도 출범을 전후로 도정은 외자 유치를 통한 경제활성화에 주력했다. 500만 달러 이상 투자 사업지를 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해 세금을 감면해주는 투자진흥지구 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많은 대규모 외자유치사업이 시동을 걸었다. 2005년 예래휴양형주거단지(서귀포시 예래동 일원 74만1000㎡, 2조5000억원)를 시작으로, 신화역사공원(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일원 398만㎡, 3조1645억원), 제주헬스케어타운(서귀포시 토평동·동홍동 일원 153만9013㎡, 1조130억원) 등 거대자본들의 투자가 제주도를 접수했다.

2010년엔 5억원 이상 투자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됐다. 중국자본 투자는 더 늘어났다. 제주분마이호랜드(제주분마이호랜드(주)), 제주백통신원리조트(백통신원(주)), 무수천유원지((주)제주중국성개발), 헬스케어타운(녹지한국투자개발(유), 열해당리조트((주)열해당리조트) 등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2006~2019년 제주도 외국인 직접 투자 신고액은 80억5524 달러. 이 중 홍콩(중국 투자기업 본사가 홍콩에 있는 경우 많음)과 중국기업 투자가 40억4000 달러로 절반에 달한다.

개발사업이 줄을 이으면서 중국인의 토지 매입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제주의 외국인 보유 토지는 2168만㎡로, 이 중 44.3%인 962만㎡가 중국인 소유다. 미국 17.7%(384만㎡), 일본 10.9%(236만㎡)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다. 개발사업이 넘쳐나면서 제주 곳곳의 마을공동목장은 급격히 사라졌다. 부동산 매입 타깃이 된 것이다. 2009년 65곳이던 마을공동목장은 10년 사이 14곳이 팔려나갔다. 매각된 마을공동목장 부지는 1066㏊에 달한다.

보물인 줄 알았던 각종 개발사업은 걱정만 안기기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에 팔린 마을공동목장들은 중국자본의 경영난이나 사업 절차상 문제로 엎어지거나 처음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개발됐다.

제주 제1호 외자유치사업이라던 예래휴양형주거단지는 2015년 사업인허가와 관련한 모든 행정처분 무효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중단됐다. 반딧불이가 장관을 이루던 서귀포시 예래동은 공사가 멈춘 콘크리트 건물만 흉물스럽게 대신 메우고 있다. 버자야그룹은 예래단지 개발로 4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지난 7월 우리 정부에 국제투자분쟁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다.

서귀포의 신화역사공원은 애초 목적은 축소되고, 호텔과 카지노 사업으로 변질됐다. 1조130억원이 투입된다던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은 중국 투자사의 자금조달 문제로 공사가 중단됐다. 국내 영리병원 허용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제주 개발사상 최대 규모인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은 자본검증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제 제주도민들은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중국자본이 들어와 사업체를 차리면 일자리가 생기고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도 사라졌다. 그 사이 세계적 관광명품인 제주의 자연은 훼손되기만 했다.

중국자본의 투자 특징을 분석한 제주연구원 자료에서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제주지역 중국자본 투자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에 투자한 중국 기업의 절반가량이 부동산 임대업 기업이고, 나머지 절반은 음식, 숙박업 기업체다. 중국자본이 부동산 사업에 집중되면서 중국인의 제주 토지 점유율은 늘고, 제주도민이 운영하는 숙박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부동산 중심의 중국자본 투자는 제조업이나 마이스산업, IT 등 제주지역 산업 정책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