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0%, 화제성 100% … 요즘 예능 ‘노이즈 마케팅’

입력 2019-10-29 04:06
지난 7일 방송된 예능 ‘밥은 먹고 다니냐?’(SBS플러스)에서 김수미(왼쪽)와 김흥국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 과거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연예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둘 얼굴을 비추면서 매회 화제 몰이를 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0%(닐슨코리아)대 시청률에도 화제성만큼은 대단한 예능이 있다. 주인공은 ‘밥은 먹고 다니냐?’(SBS플러스). 4회밖에 방송되지 않은 이 신생 프로그램이 매회 포털사이트에서 화제 몰이를 하게 된 건 다름 아닌 과거 논란이 불거진 연예인들이 속속 얼굴을 비추면서였다.

프로그램은 연예계의 소문난 요리사인 배우 김수미가 국밥집을 운영하는 과정을 그린다. 최근 많은 예능이 스타들과 일반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는 것에 발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수미는 식당을 찾은 학생과 신혼부부 등 시민들의 사연을 듣고 구수한 욕을 곁들여 가슴 따뜻한 말들을 건넨다.

그런데 정작 화제가 된 건 시민들이 아닌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었다. 성폭행 무혐의를 받은 후 약 1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흥국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프로그램 제작발표회 당시 “잊혀 가는, 상처를 받아 방송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싶다”는 김수미의 마음이 반영된 캐스팅인 셈이었다.

해당 방송분에서 김흥국은 “가족들의 충격이 컸다”며 지난해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며 겪어야 했던 생활고와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문제는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온라인상에는 무혐의더라도 불미스러운 일로 입길에 오르내렸던 이가 금세 얼굴을 비추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화제가 되면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시청자 입장은 다르다”며 “최근 몇몇 예능과 마찬가지로, 대중은 제작진 의도와 상관없이 연예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뉘앙스로 오해할 수 있다”고 했다. 2017년 애인과 법정 분쟁에 휘말렸던 배우 김정민과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받은 성현아 등의 출연자에 대해서도 엇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이슈가 될만한 스타들을 기용하는 건 요즘 들어 한층 과열된 예능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연예인 특성상 그들의 가정사 등 신산한 삶은 늘 이슈의 중심에 서기 마련이다. 주의해야 할 건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악플의 밤’(JTBC2)은 평소 악성 댓글과 루머로 힘들어 한 설리를 MC로 캐스팅한 것과 관련 폐지 요구가 쏟아졌고, 최근 폐지를 결정했다.

예능 트렌드가 버라이어티나 토크쇼에서 관찰 카메라로 옮겨온 것도 이 같은 경향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난 20일, 그룹 ‘룰라’ 출신 김지현의 시험관 시술 고백 등을 담아내며 눈길을 끈 ‘미운 우리 새끼’(SBS) 등 관찰 예능 대부분이 스타의 남모를 비밀을 담아내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트렌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 평론가는 “많은 프로그램이 노이즈를 원한다는 건 최근 절실해진 예능 시장 현실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할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공감’이고, 윤리적인 부분도 그래서 중요하다. 캐스팅과 제작 등 여러 면에서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