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 정문 부비트랩 설치 우려해 벽면 폭파하고 진입

입력 2019-10-29 04:08

미국의 공습 작전으로 미국의 ‘공개수배 1호’ 테러리스트가 숨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자 폭탄이 든 조끼를 터뜨려 자폭했다.

골프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토요일이었던 26일(현지시간)에도 라운딩을 즐겼다. 그가 백악관에 돌아온 시간은 이날 오후 4시. 넥타이 차림의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5시쯤 백악관 상황실로 갔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스콧 호웰 합동특수작전부대장까지 6명이 시리아에서 벌어진 특수작전을 지켜봤다.

이번 작전명은 ‘케일라 뮬러’였다. 미국인이었던 뮬러는 IS의 희생자다. 국제구호기관에 소속돼 시리아 난민 구호 활동을 펼치다 IS에 납치돼 18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고, 여러 차례 성폭행당한 뒤 피살된 인물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작전명은 밀리 합참의장이 지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우리는 마침내 3명의 미국인을 참수한 사람을 심판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전명에는 심판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같은 시각, 27일로 넘어가는 자정 직전이었던 이라크 북부에서 8대의 헬기가 출격했다. 목적지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지역의 바리샤. 알바그다디의 은신처로 지목된 곳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라크 북부에서 시리아 바리샤까지 가려면 이라크·러시아·터키가 통제하는 영공을 거쳐야 했다. 미군은 이들 국가에 작전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시리아에 주둔한 러시아에겐 적군에 의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충돌방지’ 차원이라고 둘러댔다. 8대의 헬기는 1시간10분 정도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미군 헬기는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에 접근할 때 총격을 받았다. 미군도 반격했고 특수부대원들이 지상에 투입됐다. 그들은 부비트랩 등을 우려해 정문 진입 대신 은신처 벽면을 폭파시키고 건물로 진입했다. WP는 미군이 5명의 적들을 은신처 내부에서 사살했다고 전했다.

타깃이었던 알바그다디는 은신처의 터널로 도망쳤다. 미 군견이 그를 쫓았다. 막다른 곳에 몰리자 알바그다디는 폭탄 조끼를 터뜨렸다. 함께 있던 자녀 3명도 함께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바그다디가 영웅처럼 죽지 않았다”며 “그는 겁쟁이처럼 죽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울고, 징징대고, 비명 지르고, 아이들과 함께 죽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26일 오후 7시15분 알바그다디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작전 시작 후 2시간15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은 27일 NBC방송에서 “현장 지휘관이 ‘100% 확신. 잭팟(대성공). 그를 잡았다. 오버’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ABC방송에서 “미군은 알바그다디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다”고 말했다. 생포하려 했으나 알바그다디가 폭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미군 특수부대는 미리 가져갔던 알바그다디의 DNA 샘플과 그의 훼손된 신체에서 얻어낸 DNA를 비교한 뒤 숨진 인물이 알바그다디라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장에서 이뤄진 DNA 검사로 15분 만에 신원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알바그다디가 2004년 2월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 부근에 있는 부카 캠프에 구금돼 있던 시절 입수해뒀던 DNA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에스퍼 장관은 “지원 인력을 제외하면 이번 작전에 100명 미만의 특수부대원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어떤 부대가 작전에 투입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미군 당군자는 “(미 육군 대테러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의 일부 멤버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부상자는 없다”고 했다. 에스퍼 장관은 “2명의 미군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지만 이미 복귀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군 헬기가 낮은 고도로 이동하는 장면이 알바그다디의 은신처가 있던 바리샤 지역의 소셜미디어로 퍼지기도 했다. 총격 장면과 폭발하는 장면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IS 격퇴에 나섰던 쿠르드족이 알바그다디 은신처 파악에 유용한 정보를 전달했다고 인정했다.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압디 사령관은 트위터에 “5개월 동안 알바그다디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 결정으로 큰 위협에 처한 쿠르드족이 미국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NYT는 두 명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은신처에 관한 정보는 지난 여름 알바그다디의 부인 중 한 명과 연락책을 체포해 심문한 뒤 나왔다”고 보도했다.

작전이 구체화된 것은 최근이다. 펜스 부통령은 CBS방송에 출연해 “알바그다디 은신처에 대한 최신 정보를 받은 것은 지난주 초”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작전 마련을 지시했고, 군 당국은 25일에 작전을 준비해 26일 공습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