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위 조직검사를 해야 합니다. 간호사를 따라가세요.”
1999년 3월 말, 서울 삼성의료원 건강검진센터에서였다. 진료한 의사가 교인이었다. 짧은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큰일이 난 걸 직감했다. 아찔했다.
부총회장에 총회장까지 지내면서 사실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었다. 건강검진도 3년이나 미루다 한 것이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누웠다. 마음이 복잡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화호리 생각이 났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달려온 여정이 뒤따라 떠올랐다.
총회 일을 하면서도 목회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소 하던 대로 금식기도도 했다. 철야기도에 새벽기도와 주일설교에 심방까지…. 늘 분주했던 시간이었다.
안식년도 사용하지 않았다. 장로님들이 제발 좀 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나는 안식년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안식년에 쉰 목사님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내 생각이 그랬단 것이다. 1년씩 교회를 비우고 싶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내가 미련했다. 몸이 무쇠인 줄 알았으니 나보다 미련한 사람이 또 있을까. 쉬었어야 했다. 1년이 부담됐다면 한 달이라도 안식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며칠이 지나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날은 4월 2일 성금요일이었다. 의료원장이 직접 결과를 전해 준다고 했다. 원장을 만났다. 각오하고 간 자리였다. 그런데 원장이 날씨부터 부활절 이야기까지 딴소리를 시작했다. 차마 결과를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먼저 말했다. “결과가 나왔지요?” 대화는 중단됐고 침묵이 흘렀다. “암이에요, 위암입니다.”
‘암이라니….’ 큰 병을 각오했다. 암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듣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쫙 빠졌다. 보통 암 환자들은 ‘부정-반항-수용’의 단계를 거치면서 투병을 한다. 정신이 돌아오자 나도 암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몸속에 자라는 악성종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원장이 정적을 깼다.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다행히 말기는 아닙니다. 그래도 시간이 없습니다. 급해요. 지금 입원하시면 제일 좋습니다.” 준비했던 말을 쏟아냈다. 날 당장 붙잡아 입원시키려는 마음이 전해졌다.
“제가 오늘 성금요일 예배 설교를 해야 해요. 제가 갑자기 입원하면 교인들이 많이 놀랄 겁니다. 급한 일만 마치고 입원하겠습니다.”
말은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무심히 창밖을 내다봤다. 늘 보는 풍경인데 그날따라 낯설었다. ‘목사도 암 앞에서는 별수없구나. 이 풍경을 계속 볼 수 있을까.’ 부정과 원망이 뒤섞였다. 혼란스러웠다. 당장 성금요일 예배 설교를 못 할 것 같았다.
머리가 복잡하니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감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도 말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이다. 나를 기다리는 의료진도 있지 않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교인들을 만나러 가자. 가서 말씀을 전하자. 이제 이틀만 지나면 부활주일 아닌가. 부활의 벅찬 희망을 전해야지.’
그리고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만해서 다행입니다. 건강 지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치료받고 더욱 열심히 목회하게 해 주세요.” 평화가 찾아왔다. 저 멀리 충신교회 십자가가 보였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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