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공교육은 분명 위기에 처해 있다. 교육개혁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시도됐지만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를 혁신하고, 그 학교에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한 풍토를 조성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그 노력 중 하나가 고교학점제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대표적인 교육개혁 정책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초등·중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수준에선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 ‘잠자는 교실’로 표현되는 고교의 비교육적 현상 타개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고교학점제가 추진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궁극적으로 학생 중심의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다. 이는 서열화된 경쟁 중심의 고교 교육을 지양하고 개별 학생의 내재된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 철학을 지향한다. 고교 교육과정을 고교학점제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확장해 획일화되고 경직화된 고교 교육과정에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간략히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교학점제는 학교 구성원들이 교육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해주는 기대 효과를 지닌다. 현행 단위제인 학교 교육과정은 소수의 학교 구성원들에 의해 편성되는 경향이 있다. 교사들의 주된 관심은 본인이 담당한 수업에 초점이 주어졌다. 고교학점제가 지향하는 학생의 적성·진로·수준을 고려한 개별 맞춤형 교육 구현을 위해서는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이뤄지는 교육 활동이 유기적으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정 편성에서 구성원 간 소통과 합의, 설득 등 치밀한 고민이 녹아들어갈 필요가 있다.
둘째,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를 통해 교육과정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일반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고 등으로 분류되는 현행 고교 유형은 학생 서열화와 사교육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동돼왔다. 어떤 학교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학생이 받게 되는 교육적 기회와 학습 경험의 양적·질적 차이가 태생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로 인해 특히 일반고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모든 학교가 학생의 진로 희망을 고려한 학생의 과목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를 실현해 고교체제 다양화에 대한 교육적 차별과 불신을 극복할 기제가 될 수 있다.
셋째,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견인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에서 학생은 대학생처럼 스스로 자신의 진로 희망에 비춰 수강신청을 할 수 있어 개인별 수업 시간표를 가질 수 있다. 기존 수업 시간표는 학생 적성, 진로, 수준과 무관하게 구성돼 대다수는 그 수업에서 목표의식을 찾지 못하고 좌절감, 실패감, 열등감을 겪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반면 학점제에서의 학습집단은 진로의식 혹은 그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목표의식이 분명한 학생들로 구성된다. 학생이 좋아하는 과목,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넷째, 학생들의 과목 선택은 그 자체가 학습 과정이며 학습 동기를 자극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고교학점제 안착의 관건은 학생들이 고교 3년간 학업 계획을 구상하고 어떻게 과목을 수강할 것인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의 과목 선택이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이는 의미 있는 학습의 과정이다. 진로 희망에 따른 치열한 고민을 통해 과목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고교학점제를 통해 교수·학습의 책무성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기존의 단위제 아래에서는 교과 성취 수준 달성과 무관하게 출석 일수만 충족하면 진급, 졸업을 해 학습의 질 관리가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고교학점제에선 학교는 학생들의 교수·학습 과정을 모니터링해 학생들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측면이 강조될 전망이다.
고교학점제는 2020학년도에 마이스터고부터 전면 실시된다. 2025학년도에는 전체 고교에 적용된다. 비판론자들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관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반드시 고교학점제를 안착시켜 유의미한 학습이 일어나는 교실, 깨어있는 교실, 질문이 있는 교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