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5년 지났다고 안심 금물… 10년 뒤 유방암 재발 많아요”

입력 2019-10-29 04:07
중앙대병원 암센터 유방암클리닉 다학제 진료 장면. 다학제 진료는 여러 관련 과 의료진이 함께 참여해 맞춤형 암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혈액종양내과 김희준·유방외과 김민균 교수, 유방암 환자, 산부인과 이은주·방사선종양학과 최진화 교수.

2006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은 박모(59)씨는 암 절제 수술과 항암 등 6년간 치료를 충실히 해 암이 완치된 줄 알았다. 암 치료 뒤 무병 생존기간이 5년을 넘으면 통상 완치로 본다. 그런데 최근 기침이 잦고 부쩍 숨이 차는 증상을 느껴 병원을 다시 찾았다가 유방암이 재발한데다 폐와 간까지 퍼졌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0기(암 전 단계)에서 4기로 구분되는 유방암은 2기 이내 초기에 발견해 수술과 항암제 투여 등 표준 치료를 받으면 5년 생존율이 90%를 넘는다. 그만큼 치료 성적이 좋은 암으로 알려져 있지만 뒤늦게 재발을 잘하는 암이란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중앙대병원 유방암클리닉 김민균(유방외과) 교수는 28일 “유방암 환자들은 항암치료 등 힘든 기억 때문에 5년간 아무 일 없이 지나면 암을 이겨냈다고 생각해 병원을 잘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다른 암에 비해 오래 사는 만큼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유방암학회에 따르면 국내 유방암의 재발률은 6~20%로 파악된다. 유방암 재발은 60~70%가 5년 안에 일어나지만 10년이 지난 후 같은 자리에 암이 다시 생기는 확률도 25%에 달한다. 국제학술지 ‘랜싯(Lancet)’에 발표된 연구논문에 의하면 유방암의 4가지 유형 가운데 70%를 차지하는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의 경우 5년간 호르몬 치료를 마친 뒤 10년째에 암 재발률이 14%, 15년째에는 25%를 보이는 등 꾸준히 증가하는 걸로 나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재발 가능성 때문에 유방암 환자는 통상 수술이나 항암·방사선 치료를 마친 뒤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를 받아야 한다. 수술한 유방이나 인근 림프절 국소 재발은 물론 뇌 뼈 간 폐 등으로 전신 재발도 많다.

유방에 생긴 암세포는 특히 림프관(체액 순환 통로)을 타고 주변 겨드랑이 림프절로 퍼지기 쉽다. 유방암 수술 시 유방절제뿐 아니라 겨드랑이 림프절도 함께 잘라내는 이유다. 이때 암세포가 첫 번째로 도달하는 ‘감시 림프절’에 전이가 발견되는 경우 유방암 재발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기존에 암의 림프절 전이를 확인하는 검사(동결절편 검사)는 부정확하다는 한계가 있다.

중앙대병원 유방암클리닉은 이처럼 재발이 잦은 유방암 치료에 있어 암 전이 가능성을 예측해 불필요한 2차 수술을 줄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치료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모바일 게임을 활용한 항암 치료, 암 환자에게 동반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까지 한꺼번에 신속하게 제공하는 이른바 ‘원스톱 패스트트랙 치료’를 실현해 의료계 주목을 끈다.

김민균 교수는 ‘유방암 림프절 전이 예측 노모그램’을 처음으로 연구 개발했다. 이는 수술 전 겨드랑이 초음파와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검사 결과, 환자 나이를 점수화해 3개 이상의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 여부와 림프절 절제 수술의 필요성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유방암은 림프절 전이가 빨라 암을 진단하고 수술받기까지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다른 어떤 암보다 신속한 검사와 수술·치료가 요구된다.

국립암센터 연구에 의하면 유방암 환자가 암 진단 후 3개월이 지나고 수술받으면 1개월 안에 수술받은 경우에 비해 사망 위험이 1.91배 높았다. 또 서울대병원은 유방암 진단 후 한 달 이상 기다렸다 수술받은 환자가 한 달 안에 수술받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1.59배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유방암으로 처음 병원을 찾는 환자의 경우 유방 초음파와 X선, 자기공명영상(MRI) 등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하고 증상에 따라 조직검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중앙대병원에선 당일 진료와 검사로 3일 이내 확진이 가능하다. 또 확진 후 1주일 안에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방암 환자 중에는 오래 대기하더라도 이른바 ‘빅5병원’에서 수술받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유방암은 확진 후 수술까지 4~6주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또 항암 치료 중인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모바일 앱 게임인 ‘핑크리본(pink ribbon)’을 개발해 항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앱을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

암 환자가 자신의 의학적 상태와 같은 온라인 게임 속 ‘아바타’를 설정해 게임을 진행한다. 유방암 환자들이 의사 처방약을 규칙적으로 투약하도록 관리해 주고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놀이와 채팅 기능이 장착돼 있다.

게임을 개발한 이 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희준 교수는 “핑크리본 게임 효과를 연구한 결과 게임을 경험한 유방암 환자들은 일반 항암 교육만 받은 이들에 비해 피로감이나 탈모, 구내염 등 물리적 부작용이 감소했고 게임을 시행한 그룹의 약물 순응도도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들에게 항암 치료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부작용에 더 잘 대처하게 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대병원은 또 암센터 내에 신경심리스트레스클리닉을 두고 유방암 환자의 불안장애와 우울증 치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국내 유방암 환자 5명 가운데 1명꼴로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다. 김선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암 걸렸다’는 막연한 공포와 오랜 치료에 대한 거부감으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기에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정신건강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