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영국인 소아성애 범죄자 검거, 한국인 수사로 이어졌다

입력 2019-10-28 04:03 수정 2019-10-28 17:15



2017년 6월 21일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한 연구원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케임브리지대학 출신 지구물리학 연구원 매튜 팔더(31)였다. 지구물리학 강사로도 일했던 팔더가 받고 있었던 혐의는 다크넷에서의 아동 성착취 영상 공유, 10대 피해자 협박, 유아에 대한 강간 장려 등이었다. 다크넷에서 유명 인사로 통했던 ‘666데빌’의 ‘이중생활’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희대의 소아성애 범죄자로 불렸던 팔더의 검거는 최근 전 세계의 공분을 일으킨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모(23)씨 수사로까지 연결됐다. 국민일보는 27일 영국 국가범죄청(NCA)의 당시 수사 결과 발표와 언론보도, 손씨에 대한 미국 수사기관의 공소장, 한국 경찰 취재를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사건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간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당시 다크웹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인더가든’이라는 인물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FBI로부터 인더가든에 대한 파일을 전달받은 NCA도 그를 찾아 나섰다. 인더가든은 10대 소녀를 협박해 찍게 한 사진을 아동 성착취 영상 커뮤니티에 올린 혐의를 받고 있었다. 영국 내 많은 피해자가 인더가든에게 협박당해 나체사진 등을 찍혔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의 실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인더가든은 평범한 웹사이트에서 여성 예술가인 척하며 피해자를 물색했다. “벗고 있는 모습을 찍어 보내주면 돈을 주겠다”고 해 사진들을 받아냈지만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다. 인더가든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친분을 쌓아 각종 개인정보를 알아냈다. 피해자의 신상을 파악한 그는 돌변했다. 자신이 시키는 대로 사진을 찍어 보내지 않으면 나체사진을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이렇게 해서 찍힌 가학적인 10대 피해자들의 사진이 웰컴 투 비디오 등 전 세계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로 퍼져나갔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2015년 4월이었다. 손씨가 범죄를 모의하기 시작할 때였다. NCA는 소아성애자 커뮤니티에서 666데빌이라는 인물이 쓴 글과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발견했다. 자신의 어린 딸을 고문할 계획이며 고문 방법을 공모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녀를 찾아내기 위해 666데빌의 웹 계정에 접속한 NCA는 666데빌과 인더가든이 동일 인물임을 밝혀냈다.

666데빌이라는 닉네임 뒤에 숨은 용의자를 찾기 위한 공조수사가 시작됐다. NCA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호주 연방경찰 등이 특별 대책반을 설치하고 증거 수집에 나섰다. 추적 끝에 2017년 4월 매튜 팔더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같은 해 10월 그는 137건의 온라인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팔더 검거는 손씨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팔더 수사 과정에서 다크웹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가 발견돼서다. 웰컴 투 비디오의 IP 주소가 한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특별 대책반은 한국 경찰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고, 지난해 3월 손씨를 그의 집에서 체포했다.

운영자가 잡힌 뒤에는 이용자에 대한 수사가 이어졌다. 한국 경찰은 해당 사이트에서 활동한 4000여명의 가상화폐 거래자 가운데 한국의 거래소를 이용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특정해 230여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차명 등 데이터 확보가 안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잡았다”며 “본청과 지방경찰청이 일제히 검거작전에 들어가면서 대부분 이용자가 잡혔지만 국가 경찰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어려운 해외의 경우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건은 완전히 마무리된 게 아니다. 경찰은 지난 16일 이후에도 몇 명의 이용자 신상을 더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 수사는 어렵다거나 다크웹은 잡을 수 없다고 했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며 “다른 단서가 나오거나 경찰이 이용자에 대해 더 인지하게 되면 수사가 더 진행될 수 있다”고 했다.

임주언 김유나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