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 이건희는 신경영 선언… 51세 이재용의 선언은?”

입력 2019-10-28 04:04
사진=뉴시스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재판장으로부터 ‘이재용 총수의 선언’, 즉 혁신을 주문받았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경영 투명성 제고와 고용 확대 등에 주력해온 터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또 다른 의미의 제2의 ‘삼성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지난 25일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치른 이 부회장은 3년 전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이름을 올린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 임기가 전날 종료됐고, 연임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비등기이사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등기이사를 내려놨다고 해서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는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재판장이 이 부회장에게 “심리 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의견을 개진하자 재계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과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1부)는 재판에서 “재벌체제는 우리 경제가 혁신형 모델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며 “재벌 총수는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하는데, 혁신기업의 메카로 탈바꿈한 이스라엘의 경험을 참고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회장은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을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삼성그룹 총수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를 두고 향후 판결의 긍정적 신호라는 시각이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에 요구되는 ‘선언’의 방점이 경영 혁신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재벌체제 요소를 바꾸는 데 찍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한 경영 전문가는 “전 세계적으로 가족경영을 하는 기업은 많지만 한국 재벌체제의 문제는 재벌이 순환출자를 통해 소수 지분으로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었다”며 “경영 투명성 제고는 재계 전체가 계속 노력을 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재벌체제 자체의 혁신보다 그동안 많은 재벌기업에서 해온 불투명 경영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총수 경영과 유사한 ‘패밀리 경영’을 하는 도요타, 페이스북 등 외국 대기업도 총수 경영을 해왔고, 잘 운영돼 왔다”며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면 재벌체제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전했다.

삼성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미 체제 개편을 진행해 왔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위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순환출자구조도 정리했다. 다만 삼성 측은 정 부장판사가 재판과 무관하게 사견을 제시한 것에 대한 지나친 해석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겸허하게 재판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