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 정통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입력 2019-10-27 20:00
여말 선초 시기를 배경으로 기구한 운명에 이끌린 청년 3명의 이야기를 다룬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최근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춘 정통 사극으로 트렌디한 각색으로 호평받고 있다. JTBC 제공

때는 고려 말, 국운은 기울어가고 사회에는 부정이 판친다. 기구한 운명이 청년 3명을 한자리로 모으는데, 팽형인의 아들 서휘(양세종) 서얼 남선호(우도환) 고아 한희재(김설현)다. 역사의 격랑은 세상이 준 상처를 간직한 이 청년들을 신념의 이름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들의 발걸음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될까.

이 작품은 이달 4일부터 방송 중인 ‘나의 나라’(JTBC). 지금껏 ‘정도전’(KBS2·2014) ‘육룡이 나르샤’(SBS·2015) 등 많은 사극이 즐겨 다룬 여말 선초가 배경이다. 제작비 200억원이 들어간 이 작품은 묵직한 액션신과 서사로 마니아층을 만들면서 4~5%(닐슨코리아 기준)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건 최근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춘 정통 사극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면이 적지 않아서다. 각색이 특히 돋보이는데, 역사를 바탕으로 중장년층을 잡으면서도 청년들의 얘기로 외연을 넓혔다. 극은 이성계(김영철) 이방원(장혁) 등 조선 건국 영웅들을 등장시키지만, 이들과 얽히며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가는 청년들의 신산한 삶에 초점을 맞춘다.

가령 이성계의 칼이 돼 썩은 고려를 바꾸고자 했던 얼자 선호는 꿈을 위해 절친한 휘를 배신하는 한편 위화도회군으로 요동정벌군이 된 서휘와 대립하게 된다. ‘밥이 곧 나라’였던 휘는 이방원의 사병이 돼 이성계를 흔들려 하고, 희재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힘을 키우기 위해 신덕왕후 강씨 부인(박예진)과 함께하게 된다.

이는 최근 시대극 대부분이 역사적 맥락을 없앤, 로맨스 일색의 퓨전 사극이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부분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삶을 지키려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의 상징처럼 보인다”며 “제작비 등의 문제로 근 몇 년간 선호돼온 가벼운 분위기의 로맨스 사극과 달리,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서사적 무게감이 상당하다”고 평했다.

2010년 조선 성균관 배경의 로맨스물 ‘성균관 스캔들’(KBS2)이 불붙인 퓨전 사극 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신세경 차은우 주연의 ‘신입사관 구해령’(MBC)이 지난달 끝맺었고, 현재도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JTBC) ‘조선로코-녹두전’(KBS2)이 나란히 전파를 타고 있다.

정통 사극은 세트와 의상, 배우 개런티에 들어가는 제작비가 상당한 데다 고증 문제도 까다롭다. 젊은 시청자들한테 어필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퓨전 사극은 제작비를 줄이면서도 젊은층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다. 문제는 비슷한 형식과 소재의 퓨전 사극이 반복되면서 식상함을 토로하는 시청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나의 나라의 액션신에 주목했다. 한 회당 70~80분에 달하는 긴 분량과 문어체 대사 등 극의 난점을 액션이 중화시켜주고 있다는 거다. 공 평론가는 “액션도 극 주제의식과 마찬가지로 젊은층에 어필하는 부분”이라며 “정통사극의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 메시지와 재미를 두루 담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대안적인 사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