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도국 지위 포기… 농업대책에 만전을

입력 2019-10-26 04:01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결국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25일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가진 뒤 향후 WTO 협상부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는 성난 농심을 달래고 농업 피해 대책을 세우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이를 의식해 합동 브리핑에서 “농업인들의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추가 검토하고 향후 WTO 협상에서는 쌀 같은 농업의 민감 분야를 최대한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1995년 WTO 출범 당시 우리나라는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은 이후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에서만 개도국 혜택을 유지해왔다. 취약한 국내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대외적 위상이 높아졌다.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만 보더라도 세계 12위로 우뚝 섰다. 더이상 개도국 인정을 받을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결정타가 됐다.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포기를 압박했다.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통상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미국의 자동차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결정 시한이 다음 달로 다가와 보복조치도 우려됐다. 그렇기에 개도국 지위 포기라는 선언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실익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농업 분야다. 당장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미래의 WTO 협상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은 불문가지다. 관세 및 보조금 등에서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율 관세를 무기로 일부 농산물 수입을 제한해왔는데 앞으로는 이게 불가능하다. 고정·변동 직불금 등의 보조금 지급도 어려워진다. 차기 무역 협상 전에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농업계는 농업 예산 증액 등 6대 요구 항목을 정부에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농업인 소득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공익형 직불제는 정부도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이는 작물·가격에 상관없이 면적당 일정액을 지급하는 형태로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이 아니다. 정부는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확충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피해 보전책에 머물러선 안 된다. 농업의 미래를 위해 자생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농정 개혁을 통해 농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정부의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농업 정책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이런 계기로 삼아야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이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