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면서 농민들에게 대안으로 제시한 카드는 ‘공익형 직불제’다.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으면 현행처럼 고율 관세로 쌀 등 일부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게 불가능하다. 직불금 같은 보조금도 줄 수 없다. 그만큼 농민들 상황이 열악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공익형 직불제 도입으로 상쇄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익형 직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는 1997년 이후 도입한 9개의 농업 관련 직불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기존 직불제는 쌀 직불금 비중이 전체의 80.7%에 이를 정도로 특정 작물에 쏠려 있다. 대형 농가일수록 혜택이 커 논란도 양산한다. 이를 개편해 중·소규모 농가에 소득이 더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고, 쌀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에도 혜택을 돌리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당초 공익형 직불제 목표는 쌀 수급불균형 해소와 농촌지역 소득 재분배였다. 하지만 WTO 개도국 지위 포기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공익형 직불제에 달려 있는 단서가 중요해졌다. 농업·농촌의 공익 증진을 위해 생태·환경 관련 준수 의무를 강화하도록 규정한 부분이다. 친환경 농업 등을 할 때 보상금 형태로 직불금을 준다는 게 핵심이다. 이 경우 WTO가 선진국에서 금지하는 보조금 지급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행 직불금 제도가 가격 하락을 보전해주는 형태라 보조금에 해당하는 것과 다르다.
이미 정부는 밑그림을 그려뒀다. 9개 직불금 중 6개를 공익형 직불제로 통합·개편할 계획이다. 친환경 직불금, 경관보전 직불금, 면적 직불금 등으로 이름은 달리 하지만 보조금 성격에서 벗어나는 건 비슷하다. 쌀만 생산하지 않도록 논과 밭에 동일 단가를 적용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관련 예산 2조2000억원도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했다.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내년 3월 1일을 시행 목표일로 잡은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업인과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