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각별한 신뢰관계’를 강조하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재개 의사를 피력했다. 올해 초에 스스로 협상 시한을 연말로 정했던 북한이 시간에 쫓겨 조급해하는 모습이다. 이에 북·미 비핵화 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문에서 “며칠 전 위원장 동지를 만나뵙고 보고드렸을 때 위원장 동지께서는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관계가 각별하다고 말했다”며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분 사이의 친분관계가 굳건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심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재개 의지도 피력했다. 김 고문은 “이런 친분관계에 기초해 조·미(북·미)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두 나라 관계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나는 김 위원장을 좋아하고, 그도 나를 좋아한다. 우리는 함께하고 서로를 존중한다”고 말한 지 이틀 만에 북한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의 대미 입장이 1주일 만에 큰 폭으로 변화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공개된 백두산과 삼지연군 방문에서는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이 강요해온 고통이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며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결렬을 선언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너무나 원론적이었다”며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정하는 바람에 시간에 쫓긴 북한이 일단 덥석 물어버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3주도 안 된 시점에 양측에서 나온 긍정적 반응은 북·미 간 상당한 정도의 물밑접촉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북한에 관해 매우 흥미로운 정보가 있고,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며 ‘중대한 재건(a major rebuild)’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때문에 양측 사이에 접점이 마련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북한은 협상 재개를 위한 선결조건을 분명히 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의 적대적인 대북 정책을 먼저 처리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인민의 생존권·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김 고문이 담화문 말미에서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고 한 것도 결국 미국이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공을 넘겨받은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미국이 그간 대화 의지를 계속 피력해 왔기 때문에 북·미 대화가 머지않아 복원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 정세 토론회에서 “미국은 상황 관리 차원에서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북한 입장에서도 추가 협상 없이 곧바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며 연말까지 한두 차례 실무협상이 더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