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고형곤)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변호인단이 평행선을 달리던 지난 23일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검찰이 파워포인트 화면에 띄운 자료 하나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검찰은 ‘가족 사모펀드’와 관련해 논변하던 중 정 교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 조모씨와 나눈 대화 내용을 화면으로 제시했다. 정 교수와 조씨가 더블유에프엠(WFM) 주가가 얼마나 오를지, 언제 팔면 좋을지 등을 논의하는 장면이었다.
2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 교수는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설립·운영 과정에서 긴밀한 관계였던 조씨와의 대화 내용을 다수 녹음해 컴퓨터 속에 녹취록 파일 형태 등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정 교수는 조씨는 물론 자신의 차명 주식을 자택에 보관해온 남동생 정모씨와의 대화 내용도 비슷한 방식으로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녹음·녹취 내용들은 정 교수가 사모펀드의 단순 투자자였던 것이 아니라 주요 경영상황 변화 이후의 주가 동향까지 고려한 핵심 내부자였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불구속을 주장하던 정 교수의 발목을 잡은 건 결국 녹음 습관이었다.
영장심사에서 제시된 정 교수와 조씨의 대화 시기는 애초 영어교육업체였던 WFM이 2차전지 음극재 개발업체로 탈바꿈한 2017년 11월 이후, 전북 군산시에 새 양산공장이 세워진 지난해 2월 이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3000원대였던 WFM의 주가가 이 시기를 전후해 한때 7000원대까지 치솟은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미공개정보 이용을 꾀하는 전형적 자본시장 범죄의 순간이 육성 대화로 포착된 셈이었다. WFM 실물주권 12만주를 본인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려던 정 교수 측은 크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특별수사 과정에서 기본적 압수 대상으로 꼽히던 정 교수의 휴대전화를 구속영장 청구 단계까지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정 교수와 주변 인물의 발언 내용들을 다수 얻을 수 있었던 점은 수사의 큰 동력이 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 교수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녹음한 내용이 많았는데, 혐의와 연결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핵심 물증 덕분인지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발부 결정은 법조계의 예상보다 이른 24일 0시20분 이뤄졌다.
정 교수 측은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다”고 영장심사 당시의 풍경을 전했다. 하지만 송 부장판사의 비교적 이른 결정에서 엿볼 수 있듯 양측이 사실관계 자체를 두고 첨예하게 맞선 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 자녀의 입시비리 부분에서도 정 교수 측은 ‘사회적 합의’를 들어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인턴활동을 허위로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수준이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취지였다. 법조계는 “사실관계 쟁점과는 거리가 멀다” “형사 재판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50분쯤 정 교수가 구속 수감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조 전 장관의 아들도 동행했다. 조 전 장관은 오전 11시35분쯤 정 교수 접견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자택으로 돌아갔다. 배우자의 건강 상태와 구치소 환경을 묻고, 향후 검찰 조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눴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정 교수 접견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허경구 이경원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