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권민정] 정직

입력 2019-10-25 04:04

오래전, 한 소년이 1년 보호관찰처분을 받고 우리 상담실에 왔다. 그 소년은 중학생이었는데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돈 백원을 훔친 죄였다. ‘백원 때문에 이런 벌을 주다니, 이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그런데 기록을 끝까지 읽어보니 그 소년이 절도로 재판까지 받은 것은 몇 백원에서 만원짜리까지 수십 차례 손을 댄 전력이 드러나서였다. 보호관찰을 받는 아이들 중에는 다른 아이들도 다 같이 나쁜 짓을 하는데 자기는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돈이 없어, 혹은 부모가 빼내 주지 않아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소년은 억울하다고 생각했을 것도 같은데 뜻밖에 기특한 말을 했다. “이렇게 벌을 받게 된 것이 저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만일 이번에 붙잡히지 않았다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돈을 훔쳤을 것입니다.”

소년의 말이 내게 감동으로 온 것은 그즈음 주위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친구를 때리고 위협하며 돈을 1년 넘게 빼앗아서 상담실에 온 고등학생은 벌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고, 그 학생의 엄마는 돈을 빼앗긴 바보 같은 아이 때문에 아들이 벌을 받게 되었으니 자기 아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가치관의 혼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손대지 말아야 할 돈을, 그것도 수십억원이나 손을 대고도 벌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한 어른 때문에 우리 동네가 무척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교회를 개척하여 대형 교회로 키운 한 목사님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간교한 뱀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 것 같다. ‘개척한 교회는 목사님 교회이니 교회 헌금은 목사님 마음대로 써도 됩니다.’ 그는 유혹에 지고 말았다. 헌금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고 돈을 보니 욕심이, 욕심은 죄를 낳았다. 돈의 맛을 알게 된 목사는 성직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인 깨끗함과 거룩함에서 멀어졌다. 결국 그는 헌금 횡령으로 고소를 당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재수가 없어서 보호관찰을 받는다는 아이처럼 죄를 인정하지 않고 벌 받는 것이 억울하다며 그는 상소를 계속했다. 그런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 몇 년 동안 싸움은 계속됐다. 아파트 단지 안 중심축에 있는 교회 건물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나붙었다. 교인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예배를 드리고, 이웃들은 시끄럽다고 아우성이었다. 목사님이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났더라면 조용히 끝났을 일이었다. 교인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눈만 있었다면 목사 편이 되어 그렇게 싸울 일도 아니었다. 한 공동체 안에서 형제처럼 지내던 교인들은 편이 갈리고 마치 원수처럼 되고 말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사태를 생각하면 예전에 겪었던 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한쪽은 “그렇게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고, 또 다른 한쪽은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인데 그렇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라고 했다. 다행히 법무부 장관이 사퇴해 일단락된 듯하지만 둘로 쪼개진 사회의 화합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출애굽기 18장 21절을 보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지도자의 덕목을 배울 수 있다. 모세가 백성을 재판할 천부장, 백부장들을 세울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을 세웠다. 즉 지도자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 정직성이었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레위기 19장 11절), “거짓을 버리고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에베소서 4장 25절). 주님은 우리 보통사람에게도 정직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런데 더욱더 지도자들에게 정직성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지도자는 자기 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혹은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권민정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