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교사’ 논란 인헌고, 학생·교장 상호 비방… 특별장학 착수

입력 2019-10-24 04:03
친여 정치 성향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하는 서울 관악구 인헌고 학생들이 23일 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위 사진). 나승표 인헌고 교장이 같은 시각 교내 시청각실에서 학생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아래). 최현규 기자·뉴시스

‘정치 교사’ 논란이 불거진 서울 관악구 인헌고에서 23일 학생과 학교 측이 교내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서로를 비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친여 정치 성향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 모임인 학생수호연대(학수연)가 기자회견을 열자 학교장이 별도 공간에서 이를 반박했다. 학수연 입장에 반대하는 학생회도 따로 기자회견을 갖고 “현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인헌고 학생 50여명이 동참하고 있는 학수연은 교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상주입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교사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학생에게 “가짜뉴스 믿는 사람은 다 개돼지야”라고 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업적을 긍정 평가한 학생에게는 “너 일베니?”라고 모욕을 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지난 17일 교내 마라톤 대회 때 반일 구호를 강요받았다며 “학생은 정치적 노리개가 아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장달영 변호사가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학수연은 전날 서울시교육청 신문고에 교사들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는 민원을 냈다. 시교육청은 곧바로 사전조사격인 특별장학에 착수했다.

같은 시각 나승표 교장은 교내 시청각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사들의 사상 주입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나 교장은 “‘조국 가짜뉴스’ ‘박근혜 사기꾼’ 등 문제의 발언들은 모두 와전된 것”이라며 “교사가 편협된 사상을 갖고 지도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의 말만 듣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 교사들 상대로 전수조사를 했고 확인 과정에 있다”며 “우리는 그런 단체(학수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1·2학년 학생회장 5명으로 이뤄진 학생회장단은 “학교 내에서 먼저 해결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인헌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학수연 주장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목소리를 냈다. 학수연의 기자회견 장소에서 학생 50여명은 “저게 개돼지다” “허언증 그만”이라고 맞받았다.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학수연은 사실을 왜곡·과장하고 있다”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페이스북 관련 글에 댓글을 달았지만 모두 삭제됐고 ‘좌빨’ ‘빨갱이’로 매도당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학생 대다수는 학수연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 학생을 하교시켰다. 몇몇 학생들은 몰려든 취재진과 보수단체 회원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며 “무섭다”고 울먹였다.

학교 주변에는 보수단체 회원 등이 몰려 정치 성향 강요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조국 OUT’ 집회를 열어온 서울대 집회 추진위원회는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선생들에 의해 학생의 사상적 자유가 침해되는 학대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학로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전국대학생연합 집행부도 지지 입장을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파장이 대학은 물론 고교에까지 번진 셈이다. 학교 인근 주민들은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빨갱이 학교 앞에 사니까 빨갱이 다 됐냐”고 목청을 높였다.

황윤태 박구인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