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평화경제” 호응 요청… 하루만에 싸늘한 답변

입력 2019-10-24 04:08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23일 서울 종로구 현대아산 사옥 내 접견실 모습. 벽면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얼굴이 그래픽 기법으로 디자인돼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금강산 관광 시설과 관련해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라”고 한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경제 기반 구축’을 강조한 이튿날 나왔다.

평화경제는 문 대통령이 꾸준히 강조해온 대북 정책 기조이고, 금강산 관광은 평화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평화경제 구상도 거대한 암초에 부딪힐 위기에 처한 셈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의도 파악을 위해선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기자들을 만나 “향후 계획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분석을 하는 것이 먼저일 테고, 그리고 협의할 수 있는 부분들은 협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경제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등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이 선순환하는 ‘평화경제’ 기반 구축에도 힘쓰겠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튿날 ‘남측 시설 철거 지시’라는 예상치 못한 강경한 반응이 나온 것이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서 새로운 시설들을 건설해야 한다’라고 언급돼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북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란 여지를 남겼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지난해 9월 평양정상회담 선언문에도 담겨 있다. 선언문에는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 공동특구 및 동해관광 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문 대통령도 꾸준히 금강산 관광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말했고, 4월에도 강원도 고성의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문제는 진척을 내지 못하는 상태다. 관광 자체는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관광 재개를 위해선 한국 정부의 자재와 장비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춰 왔다. 반면 북한은 한국 정부에 ‘미국 눈치 보지 말라’며 조건 없는 관광 재개를 촉구했다. 지난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의제로 논의되지 못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