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취지의 정책들이 현실서 왜곡돼 번번이 좌초…어떤 제도 택하든 취지 살려낼 철저한 검토와 준비 선행돼야
조국 사태의 불똥이 교육정책에 옮겨붙었다. 그의 자녀가 거쳤던 대입 수시 관문이 불공정했다는 여론은 입시제도 개편 논의를 가열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 연설에서 전격적으로 정시 확대 방침을 밝혔고 25일 취임 후 처음 교육관계장관회의를 주재키로 했다. 학생부종합전형 개선에 초점을 맞춰온 교육 당국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머쓱해졌다. 여당에선 곧바로 정시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척 슬픈 일이다. 획일적 입시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높이려고 1996년 도입된 수시제도는 ‘행복=성적순’이 아닌 세상을 지향하며 계속 확대돼 왔다. 나무랄 수 없는 취지를 조국 전 장관 같은 사회지도층과 부유층 학부모들이 편법적으로 악용하면서 불공정 제도의 표본이 돼 버렸다. 대통령의 연설은 다시 성적순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의의 정책이 불의한 결과로 이어진 현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정책의 취지가 살아나지 못하는 저(低)신뢰 사회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이 그 후폭풍에 휘말려 혼란에 빠진 것은 특히 뼈아프다.
마침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가 개막됐다. 2030년을 겨냥해 미래의 교육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자리다. 하루아침에 정시 확대란 입시 방향이 결정되고 기다렸다는 듯 찬반 논란이 벌어지는 터에 2030년의 교육을 논한다는 게 공허해 보이지만, 몇몇 제언이 나왔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부모 지위와 사교육 등 ‘학교 밖의 힘’을 입시에 동원해 촉발된 공정성 다툼은 이해관계 조정의 문제여서 단기적 해답이 없다”며 중장기 해법으로 수능에 미래역량을 측정하는 논술·서술 문항을 도입하고 학교주민자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학생의 미래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논술·서술 문항을 통해 수능의 신뢰도가 높아지면 대학의 선발방식 선택에도 자연스러운 균형이 형성되리란 것이다. ‘미래형 수능’은 과거 수시제도나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될 때처럼 나무랄 수 없는 취지를 갖고 있다. 문제는 현실에서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느냐다. 논술·서술 수능을 도입하려면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칠 교사와 교육과정이 갖춰져야 한다. 학교가 감당하지 못할 경우 학생들은 다시 사교육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장밋빛 전망과 함께 시작된 많은 입시제도가 현실에서 악용되고 왜곡돼 결국 누더기가 되고 마는 악순환. 한국 교육의 본질적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떤 제도를 택하든 취지가 살아나도록 철저한 검토와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사설] 수시의 몰락… 한국 교육의 서글픈 현실
입력 2019-10-24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