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하는 건 북의 자승자박이다

입력 2019-10-24 04:0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에 조성된 남측 시설물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의 관영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지시는 남북 관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갈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김 위원장이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 되었다”며 이례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지시가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어서 심상치 않다. 금강산관광은 개성공단과 함께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두 사업은 남측 관광객 피살 사건, 북의 핵·미사일 도발 및 그에 따른 유엔 대북제재로 중단됐지만 남북이 언젠가는 재개될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은 게 사실이다. 북이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강행한다면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꺼뜨리는 꼴이다.

김 위원장의 지시는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의 우선 정상화’에 진척이 없는 데 대한 강한 불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라면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섣부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핵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남측에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무시하고 사업을 재개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평양공동선언에도 금강산 관광 사업 등의 정상화는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단서가 깔려 있다. 그게 비핵화 협상의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금강산 관광은 현대아산이 북과 맺은 금강산관광지구 50년 독점 개발 계약에 의해 추진된 사업이다. 현대아산은 북에 거액의 사업권 비용을 지불했고 호텔 등 시설물 조성에 수천억원을 투입했다. 남측 시설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며 투자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북의 고립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 그로 인한 경제협력의 불안정성을 각인시켜 향후 다른 나라와의 경제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위험한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