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날 위하여 십자가의’ 303장(통 40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12장 1~3절
말씀 : 젊은이와 늙은이의 차이를 아십니까. 나이가 적은 사람을 젊은이라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늙은이라고 합니다.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젊은이는 ‘저를 (향해) 묻는 사람’이고, 늙은이는 ‘늘 그런 사람’이라고 합니다. 묻기를 멈춘 사람은 육체의 나이와 무관하게 늙은이입니다.
앞서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늘 묻고 따르는 사람은 믿음의 젊은이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는 젊은이인지 아니면 그저 늘 그런 소리만 하는 늙은이인지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젊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긴 수염을 기르고 가만히 앉아서 신선놀음이나 하는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분은 날마다 새날을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일찍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우르를 떠나 하란에 정착한 후 아버지가 죽자 하란을 떠났습니다.(행 7:4)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육체적인 그의 나이는 젊지 않습니다. 온몸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한 걸음 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나이에 본토와 친척이 있는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 그가 떠난 우르와 하란은 가나안보다 훨씬 발전하고 발달한 곳입니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 변두리로 이사를 한단 말입니까.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라 해도 하나님이 없는 곳은 죽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이 없는 곳은 죽은 곳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 하루를 살아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생물학적 나이로는 늙은이였지만 그의 내면은 젊은이였습니다. 그를 지켜주고, 그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그는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2~3절) 그러나 그 약속은 지금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장차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확실한 계획이나 담보가 없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실패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실패에 대비한 보험 따위는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젊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안개와 같은 답답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걱정하고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의 뜻은 늘 앞서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바울은 신앙의 젊은이입니다. 그는 과거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늘 앞서가시는 주님의 뜻을 묻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젊은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 주님, 늘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앞서가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젊은이가 되게 하소서. 안주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춘성 목사(공주 상서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