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서 또… ESS 미스터리 화재 2년간 27건 ‘애물단지’ 전락

입력 2019-10-23 04:08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힘입어 각광을 받아온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계속되는 화재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으며 세계 시장점유율 80%까지 올라섰지만, 2년 넘게 이어지는 화재의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다중이용시설을 비롯해 ESS 설치 사업장 4곳 가운데 1곳이 가동을 멈춘 상태다.

ESS는 태양광·풍력발전 등으로 얻은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설비다. 시간, 날씨에 따라 공급이 일정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때문에 신재생 발전에 필수적이다. 건물에 ESS를 설치해 밤 시간대에 남는 전기를 낮에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확대키로 하면서 2016년 전국 274개였던 ESS는 지난해 1490개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잇단 화재가 발목을 잡는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날 경남 하동군 진교면의 한 태양광발전시설에 설치된 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4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냈다. ESS 화재는 2017년 8월 전북 고창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모두 27건으로 늘었다.

정부는 올해 6월 2017년부터 발생한 23건의 화재와 관련한 민·관 합동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화재가 난 ESS 설비 관리자들의 운영·관리 미흡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가 배터리 결함은 감추면서 화재 원인을 관리자 탓으로만 몰아간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정부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 6월 이후에도 4건의 화재가 추가 발생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ESS 화재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자 민·관 합동조사위 발표 이후 발생한 화재를 대상으로 전기안전공사와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사고조사단을 구성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다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ESS를 활용한 각종 전력 사업을 신규로 허가해주고 있다. 정부는 최근 광주에 스마트그리드 체험단지를 선정하면서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한 이동형 ESS를 제작해 전력 사용량이 많은 상가나 예식장 등에 전력 공급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정작 정부가 지난 1월 가동 중단했던 공공기관과 다중이용시설 ESS 306기는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재가동을 못하고 있다. 정부는 가동 중단된 ESS의 재가동 조건으로 방화벽 설치, 이격거리 확보 등 추가 안전조치를 제시했지만 추가 조치를 취한 곳은 없다.

ESS 설비운영 업계에선 “돈을 들여 추가 안전조치를 한다 해도 화재가 안 난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지 못할 경우 신재생에너지의 ‘블루칩’(수익 창출·성장 가능성이 높은 우량주)으로 불렸던 ESS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렇다고 연평균 13.5%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글로벌 ESS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첨단산업이자 미래 성장산업이기 때문에 안정성과 경쟁력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ESS의 안전 문제는 신기술의 안정화 측면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국내 ESS 생태계가 안정성과 경쟁력을 갖추도록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